야고부-자살 사이트

입력 2002-04-22 00:00:00

산다는 것이 아름답고 녹록하지만은 않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까닭도 많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이 1936년 대공황의 여파속에서 선보였을 때, 심취한 드럼주자가 처음 목숨을 끊은 뒤 8주만에 헝가리에서 187명이나 자살했다.

이 음울한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자살 충동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햇볕마저 자살의 이유라는 조사도 있었다. 일조량이 가장 많은 달에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인체의 리듬을 조절하는 대뇌의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주범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져 삶의 이유를 믿고 살아갈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목숨을 끊는다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의 '아노미적 자살'론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IMF 경제 한파가 몰아친 1998년에 자살한 사람이 무려 1만2천458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제 사정에 대한 비관 자살이 다른 요인을 훨씬 앞지른 경우였다.

▲그러나 자살을 실직.파산.실연.고독 탓으로 돌리는 등 그 동기를 단순화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적지 않다. 전쟁 때보다 평화시에, 후진국보다 선진국에서, 어려울 때보다 잘 살 때 자살률이 더 높은 세계적인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특히 일본 같이 잘 살고 사회가 안정된 나라에서 자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00년 연말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이른바 인터넷 자살 사이트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계속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넷 상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자살 사이트의 폐해를 막겠다는 '안티 자살 사이트'의 회원들 사이에도 죽음의 여신 '칼리(Kali)'를 숭배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니 심히 우려된다. 최근 2명의 여고생과 아파트 28층에서 투신자살한 30대의 김모씨도 그 경우여서 충격적이다. 그는 지갑 속에 자필로 '나의 사랑:칼리(죽음)'라고 적은 그 여신의 그림을 넣고 다녔으며, 휴대전화 화면에도 '칼라, 시바, 통일, 부활'이란 단어들이 들어 있었다 한다.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의 배우자인 '칼리'는 암흑과 음침한 면을 대표할 정도로 잔인하고 광포하며 살상과 피를 좋아하는 신이라 한다. 이 여신의 그림은 해골 목걸이에 사람의 잘린 손을 엮어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잘려진 팔을 이어 만든 치마를 입고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신을 숭배하는 풍조가 생기는 까닭이 무엇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의 고민을 감히 촌탁(忖度)하기는 어렵지만, 인터넷의 폐해에 대한 대책은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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