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화가의 봄-여류화단 개척 김종복씨

입력 2002-04-08 14:11:00

4일 오후 수성구 상동에 있는 여류화가 김종복(72)씨의 집을 찾았다. 청아하고 고적한 느낌을 주는 2층 빨간 벽돌질이었다.널찍한 마당에는 해당화 장미 태산목 등 수목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어디선지 이름모를 새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나무 때문에 새 4마리가 자주 찾아들어…".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 함께 호흡해 왔다고 말한다. "예전 대구은행 본점 자리에서부터 수성못까지는 큰 평야였어요. 성장하면서수성들판을 거닐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그림을 생각했죠". 그가 풍경화 하나로 일가를 이룬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집 전체가 그의 작업실이었다. 마른 나무가지와 꽃들이 곳곳에 장식돼 집안 전체를 밝게 해줬다.

그는 타일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나 부엌의 환풍구, 찬장 등에도 예쁜 꽃무늬를 그려놓았다. 그의 붓질은 흉한 곳을 단번에 아름다운작품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듯 했다. "힘들게 타일을 바르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게 나을 것 같아서…". 그의 작업실은 널찍한 거실이었다. 그곳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한켠에는 물감과 이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 그의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대개 작업실과 전시장에서 보는 그림의 느낌은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작업실에서평범하게 보이던 그림도 전시장의 조명을 받고 나면 훨씬 나아 보인다. 그건 보통 작가의 경우일뿐, 큰 작가의 그림은 다소 좋지않은 환경에서도 오히려 빛을 발하는 듯 했다.

그를 보면 자연스레 '산(山)'이 떠오른다. 붉은색 노란색 등 원색을 주조로 한 강렬함과 다소 해체된 듯한 이미지속에 드러나는 서정적 긴장감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색감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늘과 구름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겠죠. 사실 마음속의 색감은 더 튀는 편인데, 작품으로 나올 때는일부러 좀 죽이는 편입니다".

그는 여류화단의 개척자라 불린다. 전국에서도 나혜석(1896∼1949)이래 동시대에 활동한 여류작가는 두세명에 불과하다."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여성이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림을 너무나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죠.젊을 때는 부모가 반대하고, 결혼해서는 혼자서 4, 5역을 도맡아야 했죠…". 그의 큰 딸과 조카 등 가족중에 화가들이 무척 많다. 그는장녀 정명화(43)씨가 오는 11일 서울 박영덕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데 무척 대견해하는 듯했다.

그는 지난 95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를 정년퇴임하고 외출을 거의 삼간채 작업에만 몰두해왔다. "최근에는 그림을 좀 쉬었어요. 귀가 좀 좋지 않아 매일 병원을 다니고 있죠. 걸을때나 밥먹을 때도 항상 그림만 생각하니까 붓을 잡든 잡지 않든 상관없어요…".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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