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화가와 가난

입력 2002-04-02 14:32:00

'화가는 배가 부르면 걸작을 남길수 없다?' 화가가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 가도를 달리면 치열한 작가정신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치 복싱선수가 여자와 돈 맛을 알게되면 링에서 하체부터 허느적거린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가난과 고독을 씹으며 광기(狂氣)의 걸작을 만들어낸 '빈센트 반 고흐'류의 스토리가 일반인들의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말이지만, 요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 않은 것 같다. 성공한 화가의 경우 비서, 조수를 거느리고 효율적으로 편안하게 작업을 하는데, 예전보다 못한 작품이 나올리 있겠는가.

평면회화를 하는 작가는 자신의 붓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수를 쓸 필요가 적지만, 설치 비디오 조각 등 그 외의 분야는 적지않은 수의 조수를 두고 있는 게 보통이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경우만 봐도 프로젝트에 따라 5∼9명의 조수를 두고 작품을 쏟아낸다. 자신은 디자인만 할 뿐, 조수들이 영상과 하드웨어, 전기기술 등을 따로 맡고 있다.

한때 백남준의 조수였다가 성공한 비디오작가로 올라선 폴 게린의 경우에서 보듯, 급료만 지불할 능력이 있다면 유능한 보조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유명한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1928∼1987)은 실크스크린(상업미술 등에 사용되는 판화기법 중 하나)공방을 세운 후 작업지시서만 내려주고 떼돈을 벌었다. 성공한 뒤에는 자신의 손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대량으로 찍어낸 작품에 사인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늘 화제거리를 몰고다니는 뉴욕 사교계의 스타로 군림함으로써 작품의 가격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결국 대가(大家)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 머리만 조금 쓰면 돈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물론 대가의 작품이라고 다 완벽한 것은 아니다. 유럽 미술관을 몇차례나 둘러본 한 평론가는 "이름값을 못하는 작품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배가 불러서인지, 전시 일정에 쫓겨서인지 모르지만 대충대충 만든 대가의 작품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무리 이름있는 작가라도 매번 걸작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파블로 피카소가 생전에 4만여점의 드로잉 회화 조각 등을 남겼지만, 가격은 수백만원에서 수십억원으로 천차만별이다. 작품성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한번 이름을 얻으면 모든 작품이 같은 가격으로 팔리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작품을 예술적 가치로 판단하기보다는, 투자적 개념으로 보는 컬렉터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잘 나가는' 작가가 돼 자신의 작품을 튕겨가며 팔기란 무척 어렵다. 이름을 얻는 화가는 100명 중 한두명에 불과할 뿐, 나머지는 평생 가난과 고독과 싸워야 한다. 그래서 예술가의 길이 힘들다고 하는 모양이다.

박병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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