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직업적인 무력감 80%. 믿을 수 없는 보도다. 마침 혹독한 황사에 시달린 것에 겹쳐서 '사회적 황사'를 뒤집어 쓴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정서적인 황폐감 같은 것이었다.
교사가 무력해지면 학교가 무력해지고 교육이 무력해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드디어는 사회와 국가를 무력감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것이다.
무력감에 찌든 교사들은 학교를 떠나서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면 될 테지만, 무력감에 주눅이 든 사회며 국가는 어디를 떠나며 어디로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망연히 젖어 있자니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대학을 갓 나와서 교사가 되었다.
그 당시, 서울의 ' 5대 사립'의 하나인, J 중.고교에서 보낸 삼 년의 세월은 필자로서는 '젊은 황금의 시기였다'. 지금도 그 당시를 회고하면 눈앞은 온통 보랏빛이다.
그때 우리들 젊은 교사들이 무력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이건 장담해도 좋다. 그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교장을 뵙고 사령(辭令)을 받았을 때, 그 분은 뜻밖의 말씀을 했다. '김 선생, 새 학기 첫날 부임을 하시는 날은 택시를 타고 오세요'.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 당시 서울 시내에는 마차가 다니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못 믿을 테지만, 마차는 전차 다음 가는 대중 교통 수단이었다. 택시는 '시발'이란 국산 승용차가 가뭄에 콩 나기로 다니는 게 고작이었다. 그걸 탄다는 것은 신출내기 대학 졸업생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뜨악해 있는 교사 후보생에게 초로의 교장은 점잖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김 선생은 지금 모심을 받아서 교사가 되려는 분이시오. 알겠소. 스승은 모심을 받는 직분이란 걸 명심하기 바랍니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 부임하던 그 날 아침 재단 이사장께서는 차를 내게 보내셨소. 교사는 모심을 받는 직분이란 것을 그런 식으로 내게 가르치셨소'.
나는 중간에서 그 분 말씀을 잘랐다. '무슨 말씀이신 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택시 타기도 힘들고 하니, 사양하겠습니다'.
이건 택시 값까지 계산에 넣은 약은 꾀였다. 교장이 손을 저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을 등지고는 조금 그늘이 진 얼굴이 한층 더 인자해 보였다.
'김 선생. 내게는 자가용 차가 없소. 그래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택시를 타고 오시라는 거요. 정문에 내리면 수위가 기다리고 있다가 요금은 지불할 것이니, 내 말대로 꼭 택시를 타고는 모심을 받는 분답게 첫날 출근을 하도록 하시오'.
그러면서 교장은 그의 말을 다지듯이, 스물두 살짜리 햇병아리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서서 교장실 문 밖까지 나와서 감격에 겨운 교사 후보생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나는 택시는 타지 않았지만, 첫 출근 날, 가슴을 펼 대로 펴고 당당하게 대문을 들어섰다. 그것으로도 모심을 받은 사람의 기세는 넘치고도 남았다. 교무실로 들어가는 현관이 별나게 넓게 보였다.
지금 세태로서는 꿈같은 이야기라고만 하지는 말자. S 교장의 마음을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고도 하지 말자.
요순시대 이야기도 아니고 공자 시대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보아야 한 세대나 한세대 반 전의 일이다.
그동안에 중고교 문교 정책, 학원의 팽창, 학교 바깥 과외의 기승, 일부 학부모의 몰지각 그리곤 돈과 권력만이 오만을 부려댄 세태 등이 야합해서는 학교 교육을 좀먹어 왔다. 그리곤 우리 자제들의 스승들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여 왔다.
교사들도 '모심'까지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기를 꺾을 정책만은 하지 말아 달라는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겸손하다.
일반 시민이나 문교 당국자로서도 S 교장의 말 한 마디, 마음 한 가닥 같은 배려는 힘겨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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