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프로젝트 신경전

입력 2002-03-23 14:00:00

유럽연합(EU)의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놓고 미국과 유럽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3억5천500만달러(약 4천600억원)를 투입, 최고 40개의 위성을 연결해 유럽 독자적인 '위치확인시스템(GPS)'을 구축하려는 '갈릴레오' 프로젝트의 추진에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현재 GPS(Globle Positioning System)로 불리는 항해위성 네트워크를 배타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유럽이 또 하나의 '위치확인시스템' 갈릴레오를 완성할 경우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가장 큰 걱정은 '안보'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항해위성 네트워크 '갈릴레오'의 탄생은 항해위성의 신호를 이용, 목표물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는 최첨단 무기를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GPS를 살펴보면, 이것이 군사적 목적으로 바뀔 때 얼마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지 짐작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대의 자동차, 트럭, 각종 배들은 GPS를 활용, 지도상에 나타나는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진로'를 바로 잡아준다. 심지어 휴대폰에 GPS 수신기를 부착,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위기에 처한 장소를 10m 범위안에서 정확히 알려주기도 한다.

미국으로서는 적의 미사일이 GPS의 도움을 받아 아군의 중요한 군사목표물이나 시설을 명중시키는 장면을 상상만해도 끔찍할 것이다. '갈릴레오' 프로젝트를 좌절시킬 수만 있다면 이 같은 걱정은 '기우'가 된다. GPS 위성네트워크를 독점한 미국은 다른 나라가 GPS 정보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려 할 경우 이를 중단시키거나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갈릴레오' 프로젝트가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점도 미국이 유럽을 설득하는 중요한 무기가 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GPS 위성네트워크의 정보를 우방국들이 공짜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갈릴레오 프로젝트는 '돈 낭비'일 뿐이라는 반박이다.

"워싱턴은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게 유럽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유럽의회 의원인 길즈 치케스터는 "갈릴레오가 좌절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유럽산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 우주항공기술과 장비제조, 소프트웨어 및 관련 서비스 산업은 갈릴레오 프로젝트의 좌절과 함께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다. '갈릴레오'는 단순한 기술이나 경제적 문제 이상의 중요한 이슈라는 게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유럽 각국의 반응은 다소 뉘앙스의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와 독일은 적극적인 반면,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주말 바르셀로나 정상회담에서 비공식적으로 입장을 조율한 뒤, 오는 26일(현지시간) 브뤼셀 유럽연합 교통장관 회담에서 '갈릴레오' 프로젝트 추진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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