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초등학교가 전하는 '동화'

입력 2001-12-17 12:51:00

"지능이 좀 모자라는 아이는 부진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 2학년 김군은 담임 선생님이 한메타자를 가르쳐 준 후부터 달라졌습니다. '어머니'를 칠 때 나타나는 '엄'자를 '어'로 만들게 삭제 키 조작을 가르치는데 한달 넘게 걸렸고, 쉬프트키로 쌍기역을 치도록 가르치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주 능숙하게 칩니다. 분당 69타면 상당히 빠른 것이지요? 누나(5학년)도 부진아이지만 100타를 넘겼고, 교과서도 더듬더듬 읽게 됐습니다"…

경북도 교육청 홈페이지(www.kbe.go.kr)의 '열린마당'에 실린 '명호 이야기' 중 하나이다. 명호 이야기는 봉화 청량산 기슭 강가에 자리잡은 명호초교 교사와 아동들의 동화같은 생활을 전한 것. 지난달 13일 첫 글이 올라 지난 5일 마지막 16회분이 실릴 때까지 매번 조회수가 500회에 이르면서 경북 교육계에 잔잔한 감동을 던졌다.

이 학교에서는 부설 유치원생부터 6년생까지 전교생이 함께 하교한다는 얘기도 올랐다. 통학거리가 10km를 넘는 아이들이 적잖지만 노선버스가 없고 특히 농번기엔 귀가해도 함께 놀 친구마저 부족한 게 농촌 현실이어서 아예 학교에서 놀다 함께 가도록 했다는 것. 대신 선생님도 남아 교실마다 5대씩 있는 컴퓨터를 가르치고, 도서실엔 에어컨을 장만해 책을 읽게 한 뒤 전교생이 함께 오후 4시 출발하는 학교 버스로 하교한다는 것.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온종일 학교'라고 했다.

올려진 에피소드 중에는 점심시간에 아동들이 조를 짜 피아노를 치고, 졸업생들이 실어 주는 명함 크기 광고 수입으로 학교 신문을 만들며, 전교생이 청량산 정상 자소봉으로 봄 소풍을 간다는 것도 있다. 그래서 학교가 더 즐거운 곳이 되자 가능하면 귀가를 늦추려는 아이들도 적잖다는 얘기.

이야기는 그러면서 지금은 6학년생 20명이 제각기 졸업앨범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3월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담은 학교 전경, 소풍.운동회 모습의 사진을 붙이고 학생 각자의 추억을 담아 A4용지 20쪽 분량의 파일에 각자의 졸업앨범을 만든다는 것. 교사들이 앞줄에 앉고 학생들이 뒷줄에 서서 찍는 사진 한 장으로는 추억을 갈무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김진호 교장은 "작년에 새로 만든 수세식 화장실에 '남' '여' 대신 '신사용' '숙녀용'이란 팻말을 붙였다"며, "성별 구분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신사와 숙녀로 대접하고 그렇게 자라도록 도우고 싶다"고 했다. 같은 생각 때문에 이 학교에서만큼은 '교사' 역시 반드시 '선생님'으로 불린다. 그랬더니 학부모들까지 "아무개는 참 잘한다"가 아니라 "아무개 선생님은 참 잘 하신다"는 표현이 뿌리내렸다.

'명호 이야기를 끝내면서'라는 마지막 글에서 류성번 교감은 이렇게 썼다. "말장난과 험담으로 얼룩진 벽면을 닦아내는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리기로 선생님들과 의논해 결정했습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주장보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해.관심을 더 발전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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