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건들바우 박물관

입력 2001-12-14 15:18:00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게 하나 있다. 대구시 대봉동 건들바우 언덕 위에 있던 무속 박물관 말이다. 건들바우 무속 박물관은 설립자가 개인 돈을 들여 만들고 운영해 왔던 사설 박물관이다. 민속 신앙과 관련된 귀중한 물품과 자료 수백점을 수집해 전시해 왔던 이 박물관은 비록 그것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것은 아닐지라도 전래 무속에 관심 있는 이나 민속학을 연구하던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로 무속 분야에서는 전국 유일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지역 사회의 무관심과 당국의 외면 속에 다른 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라 한다. 박물관 건물도 이미 다른용도로 쓰이고 있고 전시자료들은 창고에 보관 중이란다. 대구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자원을 잃어버린 셈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귀한 줄 모르다가 정작 문을닫고 나니 아까운 생각이 더하다.

세월이 흐르고 삶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평범한 일상 속에 우리 가까이 있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거나 원형이 바뀌고 있다. 까까머리에 잘 어울렸던새까만 교복과 교모도, 낡은 수동식 카메라와 전축들도 찾아보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사소한 것들이라 해도 먼저 산 사람의 지혜와 삶이 스며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허물어진 고향집 담장에도 애틋한 마음이 일 듯이 옛 것에 대한 향수도 본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너무 바빴다. 돌아 볼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린 통에 낡은 것이 주는 따스함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일까? 반갑게도 요사이이런 저런 박물관이 더러 생긴다. 철도, 석탄, 농기구, 등대, 김치, 사진, 의학, 종교 박물관 등등. 굳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아주 오랜 역사가 아니라도 괜찮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살아온 일상의 모습이라도 제대로 챙겨 둘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 더 소중할 지 모른다.오는 주말에는 아들 놈 손을 잡고 가까이 있는 박물관을 찾아야지. 교대 박물관에서 어릴 적 교과서도 만나고, 청도 농기구 박물관을 들러 아버지 농사짓던모습을 아들 놈에게 보여주고도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약령시 전시관에도, 동산 의료원 박물관에도 들러야지. 건들바우 박물관처럼 문 닫고 나서 후회하기전에.

대구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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