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하순 모 유력 일간지를 중심으로 법인세 폐지론이 제기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법인세 폐지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 잘 살고 더 편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원가 절감으로 국제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고, 자본의 해외 유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외국 자본의 유치도 손쉬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투자 의욕의 고취가 절실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법인세가 투자 위축의 주범은 아니다. 우리 나라의 법인세율은 최고 28%에 불과하다. 추가되는 지방세를 고려해도 30.8% 수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 중 가장 낮은 세율이다. 미국의 경우는 35%의 법인세를 내고도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또다시 배당소득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우리의 법인세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대만이 25%로 우리보다 조금 낮을 뿐, 중국.태국 등 대부분이 30% 수준이다. 우리 기업이 법인세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
법인세 폐지로 인해 발생할 세수 감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 국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5%를 상회한다. 지난해만 해도 18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개인소득세보다도 오히려 그 비중이 더 크다. 이런 마당에 법인세를 폐지하고 개인소득세나 부가가치세를 올려 세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분배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소비가 위축될 것이 뻔하다. 물가상승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나 근로자의 개인소득세를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올린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법인세 폐지론은 세수 결손을 감수하자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 '더 잘 살고 더 편한 나라'는 '작은 정부'하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것은 세계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정부가 반드시 세수 규모가 작은, 할 일 없는 정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의 문제다. 쓸데없는 권위주의적 규제가 없는 정부, 그러나 필요한 규제는 냉정하게 집행하는 정부, 민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게 맡기는 정부, 대신에 정부가 해야할 일은 주저하지 않고 철저하게 챙기는 정부, 군림하기보다는 살뜰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바로 그런 효율적인 정부가 작은 정부다.
법인세 폐지 주장에는 표면의 논리보다 이면의 이데올로기적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다.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궁극적으로 야경국가 이데올로기다. 치안유지 이외에 어떤 분야에서도 국가는 손을 떼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부른다. 야경국가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불렀고 그 와중에서 인류는 엎치락뒤치락 2차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양 쪽 이데올로기를 모두 극복한 복지국가적 자본주의를 이룩해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초기 자본주의적 야경국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공산주의가 패퇴했으니 이제 그래도 좋다는 말인가. 그래서 '누가' 더 잘 살고 '누가' 더 편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인가. 그럼 도대체 도로는 누가 닦고 항만은 누가 건설하는가. 공교육은 포기해도 좋단 말인가. 그러잖아도 점차 확대되어 가는 빈부 격차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겨우 얼기설기 짜들어가기 시작한 사회안전망은 다시 없었던 일로 해버려도 좋단 말인가.
복지국가 시스템에 허점이 있으면 그걸 고치면 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불태우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법인세 폐지론은 가히 반역사적.반문명적 발상이다. 발상의 전환이랍시고 느닷없이 제기된 법인세 폐지론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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