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단지의 호숫가. 힐튼호텔에서 선착장으로 가다보면 널다란 잔디광장에 크고 작은 야외 전시품들이 행인의 눈길을 끈다.
11m가 넘는 거대한 붉은색 쇠덩어리가 있는가 하면, 3m남짓한 귀엽고(?) 유머넘치는 남녀 청동상의 모습도 보인다. 존 헨리, 페르난도 보테로, 조엘 사피르, 알렉산더 리버만, 안토니 카로... 광장의 조형물들은 현대미술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옛것으로 넘쳐나는 고도(古都)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미술품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옆에 소담스런 느낌을 주는 지상 2층의 석조건물이 아트선재미술관(관장 정희자)이다. 미술관이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대구경북 유일의 미술관이면서 열악한 입지조건을 극복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왜 아트선재미술관인가=이곳에서 전시회가 열리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이고 부산 울산의 미술애호가들이 큰 관심을 갖는다. 볼만한 전시회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곳의 효용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
대구시립미술관은 계획만 세워져 있을뿐 시공도 못한 상태이고, 울산과 부산의 경우 전시수준이 이곳에 미치지 못한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관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97년 IMF전만 해도 전시예산으로 일년에 12,3억원을 들였지만, 지금은 6,7억원 정도로 줄었다. 예전에 비해 다소 전시수준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힘든 전시회를 자주 연다. 현재 열리고 있는 윤형근(73).심문섭(59) 개인전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어떤 전시회를 열었나=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평균 150명. 규모가 방대한 서울 호암갤러리의 60,70%수준이지만 경주라는 입지적인 조건에 비해서는 놀랄만한 성과다. 지금까지 연 전시회는 모두 56개이고, 매년 4,5차례 전시회를 열고 있다.
93년에 연 모빌조각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전시회는 4개월동안 11만5천여명이 관람했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95년 '프랑스미술, 오늘의 시각', 96년 '보텔로전', 97년 '중국 현대미술의 단면'전도 대내외의 주목을 받은 전시회다.
▲대우와의 관계는?=아트선재미술관은 지난해 대우사태의 여파로 한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운영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김우중 전회장의 부인 정희자(61)씨가 창립자이고 현재도 관장으로 있다. 정씨가 이곳에 미술관을 세운 것은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경주출생으로 경주여고를 나왔기 때문.
미술관은 대우사태 이전에는 대우개발에 속해있다 이제는 경주 힐튼호텔의 법인인 '필 코리아'에 소속돼 있다. 미술관 관계자는 "정관장이나 대우측의 차입금이 줄긴 했지만, 정부지원금 해외문화교류기금 등을 활용해 원활하게 꾸려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관장은 현재 김우중 전회장과 해외에 장기 체류중이고, 딸인 김선정(36)씨가 부관장으로 가끔 경주에 내려와 중요 전시계획을 결정하고 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아트선재미술관 큐레이터 이두희(34)씨. 7년째 미술관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는 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전시 기획.관리는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차례씩 단체 관람객들에게 작품 설명을 해주는게 그의 일과다.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는데...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데 적지않은 보탬이 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세계미술의 흐름과 지역문화를 적절히 조화시키고 보여주는게 우리 미술관의 목표다.
-향후 미술관 전시계획은.
▲내년에도 국제 전시회에 주력할 것이다.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주목받는 40대 작가들을 초청해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 지역문화에 대한 배려가 소홀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97년부터 99년까지 '일상의 신화'라는 제목으로 경상.충청.전라도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괜찮은 작가들을 상당수 소개한 것 같아, 한숨 돌리고 나면 다시 재개할 계획이다.
-미술관의 사업중 내세울 만한 것은.
▲정기 강의, 작가와의 만남 등도 괜찮지만 무엇보다 미술관 멤버십 활동을 자랑하고 싶다. 대구 울산 부산 등의 미술애호가 180명이 가입돼 있고, 미술관과 작가 작업실 탐방, 전문강좌 등 각종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다. 전국 미술관중 가장 잘 운영되는 사례로 꼽힌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