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대학 合格기원 상품

입력 2001-10-31 00:00:00

'선물'이라면 산타클로스를 떠올리게 된다. 유산을 가난한 세 남매에게 남몰래 선물한 그였지만 이제 그 순수성이 얄팍한 상혼에 왜곡되고 있는 세태다. 대학 입시 결전의 수능시험 날이 눈앞에 다가오자 소위 '입시 기획 상품 특수'가 기승인 모양이다. 학벌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선 온 나라가 들썩거리는 대학 입시철이야말로 '합격 기원 상품'으로 한몫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호기이므로 별별 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올해 기획 상품의 화두는 '언어 유희'로 신세대 감각에 맞게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땅콩엿·해바라기엿 등을 함께 담아 포장에 가세('가위'의 사투리) 모형을 붙인 '가세 가세 대학 가세'를 비롯 '대학 가서 인생 피자'류의 종합상품들, 인스턴트 찌개·카레·음료 등에서 따온 '합격을 멋찌게' '1번에 대학 가래' '다풀레', 온라인 게임을 패러디한 '수능 크래프트' 등이 인기란다.

▲해마다 그렇듯이 재래식 엿에서 초콜릿까지 그 내용물들은 비슷하지만 아이디어들은 말장난을 즐기는 신세대들의 변화무쌍한 취향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까지도 인기를 누렸던 '잘 풀어' 화장지, '잘 찍어' 포크와 카메라, '딱 붙어' 딱풀 모형 엿, '잘 보라' 돋보기 등 일차원적인 언어 유희 상품들이 시들해졌고, '합격 기원' '고진감래'류의 문구들은 '약발'이 떨어진지 오래여서 세태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어디 그 뿐인가. 금기(禁忌)의 벽을 허물면서 되레 뜨는 상품들마저 없지 않다. 종래에는 '미끄럼'을 연상시키는 물건들이 금기시됐지만 '미리 액땜해서 실전에서 효험을 보자'는 홍보 문구에 힘입어 미역이나 바나나가 액땜도 하고 영양 섭취로 실속도 챙기는 선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엽기적인 것을 선호하는 취향을 겨냥한 변기 펌프 모양의 포장 엿도 인기를 얻고 있다니 세상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것 같다.

▲합격 기원 상품은 남들이 하니까 안 하면 섭섭해 주고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속으로는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징적으로 간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에게 안도감을 높이고 불안감은 달래는 효과가 있을는지 모른다. 팬시용품 업체들은 수능 관련 상품의 매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려 잡고 있다고도 한다. 돈벌이도 좋지만 입시 특수 상품들이 선물의 의미를 지나치게 왜곡시키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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