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왜 무너졌나

입력 2001-10-29 15:35:00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직행할때까지만 해도 삼성의 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성은 우승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진 팀이었다. 확실한 선발진과 양적으로 풍부한 투수진, 짜임새를 갖춘 타선, 그리고 몰라보게 달라진 끈끈한 조직력과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명장'김응룡 감독이 버틴 삼성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빨 빠진 사자였다.

삼성이 왜 또다시 '가을의 악몽'을 되풀이 해야 했을까.

◇막판에 악재가 터졌다

한국시리즈 문턱에서 불거진 에이스 갈베스와 안방지기 진갑용의 부상이 치명적이었다. 2승을 챙겨 우승을 담보해 줄 것으로 믿었던 갈베스가 두 차례의 선발등판에서 1승은 커녕 모두 5회를 넘기지 못하며 무너졌고 이는 투수로테이션을 흐트려 마운드의 '도미노붕괴'를 몰고 왔다. 반면 두산은 삼성보다 처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선발, 중간, 마무리가 확실하게 역할분담을 소화해 내 코칭스태프의 의도대로 경기를 꾸려 갈 수 있었다.

또 포수 진갑용이 부상 후유증으로 제몫을 못한 것도 실패의 요인. 김동수가 교대로 마스크를 썼지만 기대이하였다. 한국시리즈에 임박해서야 타격연습을 할 수 있었던 진갑용은 시즌 중에 보인 타선의 연결고리역과 안정된 수비로 상대를 압박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두산 포수 홍성흔은 MVP후보에 오를 정도로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분위기 메이커역을 톡톡히 해냈다.

◇코칭스태프도 안일했다

삼성은 벤치싸움에서도 밀렸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용병술에서도 번번이 실패했다. 김응룡 감독은 뒤늦게 합류한 갈베스의 연습투구량이 절대부족이었다고 실토하면서도 시즌 중의 활약만을 믿고 개막전선발로 투입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에 대해 임창용은 5차전 승리 후 "차라리 몸상태가 좋은 내가 개막전 선발로 나갔다면 경기흐름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김감독의 용병술도 실패작이 많았다. 4차전에서 한국시리즈 사상 1이닝 최다타석인 15명의 두산 타자가 나갈 동안 같은 유형의 투수들만 투입, 경기흐름을 끊어 놓지 못한 것이나 4차전부터는 김현욱, 전병호 등 언더핸드나 좌완투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이들이 앞선 경기에서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잇달아 열리는 7차전 승부에서 3~4명의 투수로는 1~2경기는 잡을 수 있어도 우승은 힘들다.

또 1,2차전에서 연거푸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를 3차전 선발로 내세우거나 4차전에서 마무리 김진웅을 3회에 올린 용병술도 김감독 답지 못했다.

◇'야생사자'가 없었다

삼성이 또다시 한국시리즈와의 악연을 떨치지 못한 것은 '승부사적 근성' 부족도 크게 작용했다. 단기전은 분위기싸움이다. 위기나 찬스에서 얼마나 강한 승부근성을 발휘해 상대의 기를 꺾느냐에 따라 경기흐름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치렀고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두산 선수들은 팬들의 함성을 유도하는 제스츄어까지 취해가며 경기흐름을 탄데 반해 삼성은 두산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주눅이 들었다.

위기때 마운드에 오른 이용훈, 전병호, 김진웅 등 '큰 무대'경험이 적은 투수들은 대관중 앞에서 공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고 4번 마해영의 부진, 3루수 김한수의 잦은 실책도 악재로 작용했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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