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10-25 15:02:00

◈(42) 담배의 내력과 폐단을 노래한 담방구타령

벌써 담배농가에서는 담배수매가 한창이다. 목화는 14세기에 문익점에 의해서 들어왔는데, 담배는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따라서 담방구타령은 한결같이 "구야 구야 담바귀야 동래 울산에 담바귀야"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 담배의 옛이름은 담바귀 또는 담방구였는데, 다바꼬(tabacco)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초기에는 담바고[淡婆姑] 또는 '담파귀'라고 적었다. 담배도 외래어이지만 한국어답게 변용을 거친 셈이다.

요즘은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산다. 말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 등 우리 살림살이가 온통 서양사람 꼴을 좇아가다 못해 이제는 외국 전쟁조차 우리 전쟁으로 껴안는다. 미국이 테러보복 전쟁을 선언하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우리 대통령은 즉각 이를 지지하며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야당 총재도 김원웅 의원이 당론과 달리 보복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을 펼쳤다고 격노했다. 미국 전쟁에 쌍지팡이를 집고 나서는 꼴이다. 김의원 말마따나 "일부 수구 세력은 미국을 우리 조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올 때는 어땠을까. 담배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문화충격이 담방구타령에 잘 드러나 있다.

구야구야 담바귀야

동래나 울산에 담바귀야

너희국은 좋다더니

대한의 국은 왜 나왔나

우리 국도 좋건마는

대한의 국을 유람 왔네

은을 주려구 나왔느냐

금이나 주려구 나왔느냐

은도 없고 금도 없어

담바귀씨를 가지고 왔네

강화도 사는 이경근 할아버지의 '담바구 타령'이다. 담배는 동래와 울산 같은 항구를 통해서 외국사람들이 들여왔던 모양이다. 따라서 우리 백성은 묻는다. 너희 나라가 좋다더니 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가 하고 말이다. 유람하러 왔다고 하자, 그럼 은이나 금을 주려고 왔느냐 하고 다시 묻는다. 요즘 한국 방문의 해를 정해 놓고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안달하고 있는 듯한데, 당시만 하더라도 유람차로 왔다면 금은을 가지고 왔느냐 하고 당당하게 따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금은이 없어서 담배씨를 가지고 왔단다. 담배를 팔아가며 금수강산 유람을 공짜로 한 셈이다. 최근에 미국정부가 마약으로 규정한 담배는 17세기 미주 지역으로부터 이렇게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다.

여기저기 저 산 밑에

담바귀 씨를 넘겼더니

낮이며는 양기를 맞고

밤이며는 찬이슬 맞어

겉잎 나고 속늪 나서

점점 자라 왕성했네

겉대 속대 다 잦혀놓고

속에 속대를 따다 놓고

담배씨를 여기 저기 뿌려서 자라는 모습을 노래하는 대목이다. 낮에는 볕을 쬐고 밤에는 이슬을 맞아가며 왕성하게 잘 자라는 것이 담배다. 담배는 어느 농작물 못지 않게 키도 크고 잎도 넓다. 키는 수숫대요 잎은 호박잎에 맞먹는다. 이렇게 자라면 거친 겉잎은 제쳐두고 보드라운 속잎을 따다가 담배를 건사한다.

초야초야 담배초야

동래울산 담배초야

나랏님 거게는 충신초요

부모님 거게는 효자초요

형제간에 우애초요

과부씨의 한심초요

성주 사는 배분선 할머니 소리이다. 담배를 나누어 피우면서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기능을 긍정적으로 노래한 대목이다. 다른 노래에서도 '친구간에 인정초요/ 늙은과부 심심초요/ 젊은 과부 도망초라' '가장에는 열녀초요/ 내외간에는 사랑초'와 같이 담배를 피우면서 우애도 다지고 사랑도 나누는가 하면, 담배가 늙은 과부에게는 심심풀이 구실을 하지만 젊은 과부에게는 도망을 가도록 용기를 주는 구실도 한다는 것이다. 담배가 이처럼 좋은 구실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지나치지 않는다.

은장도라 드는 칼로 어석어석 잘라내어

할아버지 한쌈지요 아버지도 한쌈지요

총각쌈지 한쌈지요 처녀쌈지 한쌈지요

청동화로 백탄불을 이글이글 피워놓고

소상반죽 동래분죽 열두 마디 길게 맞춰

담배 한 대 피고 나니 목구멍에 안개 끼고

또 한 대를 피고 나서 배꼽 밑에 요분난다

울산 사는 김석보 어른의 '담바귀 타령'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총각과 처녀 분별이 없다. 모두 한 쌈지씩이다. 초기에는 남녀노소 분별 없이 담배를 피웠던 모양이다. 걸작은 담배를 피우는 상황이다. 청동화로에다 숯불을 이글이글 피어놓고 소상반죽 열 두 마디로 길게 담뱃대를 맞추어 물고 담배를 한 대 피우니 목구멍에 실안개가 낀 듯하다는 것이다. 한 대를 더 피우니 배꼽 밑이 요분질을 한단다. 담배가 사람을 들뜨게 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노래한 셈이다.

담방구 한 대를 풋고나니

오장육부가 딩딩해여

담방구 두 대를 먹고나니

손톱발톱이 육갑을 한다

상주 이수춘 할머니 소리이다. 담배에 취해 가는 정황을 아주 그럴듯하게 노래했다. 한 대를 피우고 나면 오장육부가 두근두근하고 두 대를 피우고 나면 손발톱이 육갑을 한다. 가만있던 손발가락이 미친 듯 덜덜 떨리는 모양이다.

또 한 대를 먹고나니

청룡황룡이 꿈틀어진다

저기 가는 저 마누라

냉수나 있거든 한 그릇 주오

언제나 본 듯 임이라고

냉수나 한 그릇 달라시오

저기 가는 저 할머니

딸이나 있거든 사위 삼으시오

또 한 대를 피우고 나니 청룡황룡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온 몸이 어지럽게 뒤틀리는 상황 같기도 하지만, 담배연기가 공중에 피어오르는 모양이 마치 청룡황룡이 뒤엉켜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담배를 계속 피워서 취하게 되면 감각이 무디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질 뿐 아니라 마음도 대담해지는가보다. 길 가는 낯선 부인더러 '마누라! 냉수나 한 그릇 주시오!' 하고 무례한 희롱까지 한다. 정말 간 큰 남정네다. 물론 그 부인은 언제 본 님이라고 냉수 달라느냐 하며 쏘아붙이고는 제 갈 길을 간다. 이번에는 길 가는 할머니더러 딸이나 있거든 자기를 사위 삼으란다. 점점 대담해진다. 할머니 또한 딸이야 있지만 나이가 어려서 안 된다고 거절한다. 그런데 정작 겉몸이 단 것은 그 딸이다. '어머니! 나이 어리다는 말은 마시오, 제비가 적어도 강남 가고, 참새가 적어도 알만 잘 까니, 시집만 보내 주면 올해 외손주 보게 해 드리겠다'며 나선다. 당찬 딸이다. 담배 기운에 취한 남정네보다 더 당차다. 사랑에 취한 사춘기의 들뜬 마음이 어찌 담배 기운에 견주겠는가.

요즘 나라 밖에서는 테러에 취하고 보복전쟁에 들떠 있는 듯한데, 나라 안에서는 권력에 취하고 내년 대선에 들떠 있는 듯하다. 연이어 터지는 각종 비리 사건과 정치권력이 얽혀든 공권력의 사유화 작태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것을 보면, 정부여당이 권력에 취해 정권교체의 명분이나 권력의 도덕성 같은 것은 진작 내팽개친 듯하다. 선거법 위반 때문에 벌이는 재선거에 선거법 위반으로 옷을 벗은 전직 의원과 자진 사퇴한 인물을 다시 공천하고도 승리를 기대하는 야당 총재의 편법은 마치 차기집권을 한 것처럼 들떠 있는 꼴이다. 불법이 판친다고 편법도 판쳐서야 어디 나라꼴이 되겠는가. 이래서는 그냥 가도 문제고 바뀌어도 문제이다. 답답한 사람들은 담배 갑에 손이 절로 갈 만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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