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내친구-TV바로보기(3)

입력 2001-10-24 14:24:00

◇TV 보며 생각하기=TV를 보면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느끼고 깨닫고 배우는 것이 있을까?

자녀와 함께 TV를 시청한, 그것도 괜찮은 내용의 프로그램을 함께 보는 부모들은 자녀가 TV를 통해 무언가 생각하고 배우기를 바라게 된다. 조금이라도 행동이 바뀌길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나 훈련 없이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 어찌 보면 TV를 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른들조차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깊은 생각으로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경향이 강한 어린이들에게 프로그램의 어떤 내용이 좋은지 나쁜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내 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을 차분히 따져보게 하려면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TV 모니터링으로 불리는 이런 과정은 TV에서 쏟아지는 내용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기 십상인 어린이들에게 분별력을 길러주는 유용한 방법이다. 봐야 할 프로그램, 보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을 판단하는 능력도 이를 통해 키울 수 있다.

◇좋은 프로그램 보기 수업=지난 22일 오후 대구 교동초교 5학년1반 학생들이 이재완 담임선생님 지도로 미디어 수업을 체험했다. 수업은 방송을 시청한 후 느낌을 토론하고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 올리는 순서로 한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시청 프로그램은 지난 2월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 '철새의 땅'. 먹이가 부족해 겨울나기가 힘든 철새와 이로 인해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 갈등을 담은 내용이다. 인터넷 KBS 홈페이지에 접속해 VOD로 교실 내 대형 TV에 연결했다.

교육적으로 볼만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루해했다. 5분도 안 돼 잡담과 장난, 낙서 하는 아이가 제법 눈에 띄었다. 상영이 끝난 후 물어보니 사전에 이 프로그램을 본 어린이는 3명에 불과했지만 사정은 그랬다.

4, 5명씩 모둠으로 나눠 토론하고 발표하게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배울 수 있는 점과 보고 느낀 점 등 2개 항목으로 나눴다. 역시 TV 프로그램을 본 뒤 생각하고 토론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교사는 "대부분 어린이들이 TV를 습관적으로, 재미에만 치중해 보기 때문에 토론이나 발표에 상당히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리한 내용을 프로그램 인터넷 홈페이지(www.kbs.co.kr/environ)에 있는 시청자 게시판에 올리는 순서가 되자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컴퓨터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하는 모습이었다.

이 반 어린이들은 이날 오후 29건의 시청 소감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 가운데 차윤미 어린이의 글은 다음과 같다. "오늘 학교에서 철새의 땅이라는 것을 보고 철새들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농사 짓는데 방해 된다고 먹이를 없애버리는 농부들이 좀 미워졌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철새가 농민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철새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철새들에게 모두 이득이 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모니터링 해 보기=어떤 프로그램이든 무관하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은 교양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유리하다. TV를 함께 보거나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녹화돼 있는 것을 PC로 본다. 가족이 함께 프로그램을 보고 느낀 점, 얻은 교훈, 몰랐던 것, 아쉬운 점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내용을 정리해 방송국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 올린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아이들은 즐거워하므로 직접 해 보게 한다.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글이나 제작진의 답변 등을 살펴보게 하고, 방송국에서도 시청자 반응을 참고해서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경험이 생겼다면 쇼.드라마 등 일반적인 프로그램을 보고 시청 소감을 쓰도록 권해 본다. 이때는 약간의 도움말을 줘야 한다. TV 모니터링을 하는 시민 단체에서 제시하는 것으로는 "방송에 나오는 말이 자극적이거나 저속하지 않은가, 출연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가, 남녀 차별적인 요소가 있는가, 특정 회사의 제품을 광고하지 않는가, 배경 음악이나 자막 등의 문제는 없는가…" 등이 있다.

시청 소감을 정리하고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게 하는 효과는 의외로 크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시청자 게시판에 참여하게 하는 습관을 들여준다면 멍하니 TV에 빠져드는 모습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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