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을 찾아서-영야읍 감천마을

입력 2001-10-18 14:55:00

◈우국충청 선비 기개 오롯이

일제 강점기 민족혼을 노래 했던 마흔 여섯 단명시인 오일도(吳一島)의 애절한 정서가 전해오는 감천마을. 시인의 애상은 아직도 못다 지워져 그의 시비 앞을 굽이치는 반변천은 오늘도 서럽게 흐른다.

영양읍 감천리는 낙안 오씨들이 400년을 살아온 집성마을이다. 처음에는 지곡(地谷)이라 하다 통정대부를 지낸 오시준 선생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동곡(東谷)이라 개명 했고 후일 마을 뒷산 기슭에 맛좋고 맑은 물이 솟고 마을 앞으로 강이 흐른다 해서 감천(甘川)이라 불리게 됐다.

근대화 하는 과정에서 가옥들이 개량돼 전통마을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으나 지금까지도 태를 갖춘채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웅장한 44칸 기와집이 예스러움과 영화의 과거사를 대변하고 있다.

이 고택은 1930년대 후잔 순수 시잡지인 '시원(詩苑)'을 창간, 신시의 방향을 정립하고 이를 통해 조지훈 등 영양지역 후배문인들을 이끌었던 일도(一島) 오병희(吳熙秉.1901~1946)의 생가다.

국운헌(國雲軒) 현판이 걸린 툇마루에 올라 강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흔 여섯 단명시인의 정서가 애절히 다가온다. 천석거부의 영화가 사라진 고옥 행랑뜰에는 시인이 밤마다 민족의 지조를 곱씹으며 어루만졌다던 감나무가 외로이 서있다.

입 구(口)자의 정침은 전면과 우측에 마루가 돌출되고 정면 4칸, 측면 7칸의 홑처마와 합각지붕으로 구성돼 있으며 대문칸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글방이 우측에는 사랑방이 연결, 접대공간과 학문공간을 구분 했다.

마을앞 반변천에는 아름드리 송림이 울창한 침벽공원이 조성돼 있으며 강건너 측백수림 천연기념물 보호지역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옛 마을의 풍광을 더해주고 있다.

마을 우측 강 절벽에는 입향조인 오시준 선생이 지은 연소정이 선비의 기개를 품은채 서있다. 이 정자는 좌우로 누의산과 취소산이 둘러 있고 앞으로는 수십척의 암석이 병풍처럼 감싸 봄과 여름이면 진달래 철쭉 개나리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나무가 흐드러져 한층 운치를 돋군다.

그 뒤쪽 국도변으로 오일도 선생의 시비가 서있다. 지근에 1780년 사림이 합심해 세운 운곡서원이 있었는데 당시 신성한 문인이 기거한다해서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가라고 한 하마비가 마을앞에 세워져 있다.

운곡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건립 85년만에 없어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이 남아있다.

이밖에 병암재와 화수재 등 제사를 지내던 사당은 원형을 거의 유지한채 전해지고 오성찬씨댁 등 전통가옥 3동도 잘 보존돼 오씨 집성촌의 영화와 유풍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일월면 주실마을과 석보면 두들마을, 입암면 연당마을과 함께 영양지역 대표적 전통마을인 감천은 최근 영양군의 전통마을 정비계획에 의해 새로운 변화를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전통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훼손된 문화재와 마을내 콘크리트 포장길과 벽돌담장을 옛 토담길로 복원한다. 그길을 따라 선현과 선각 문인들의 자취를 더듬을 날이 기다려 진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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