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10-18 00:00:00

(41)-큰애기들의 목화 따는 노래

'한 나무에 꽃이 두 번 피는 것이 뭔가?' 수수께끼의 하나다. '열매 맺은 뒤에 꽃 피는 것이 뭐꼬?' 글쎄! '고개 중에 제일 높은 고개는 뭐며, 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꽃은 뭐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수수께끼란 양식은 본디 그렇다. 이치를 따지면 답이 없다. 이치에 닿지 않은 질문이 수수께끼이다. 한 나무에 꽃이 두 번 필 수도 없고 또 꽃이 피기 전에 열매가 먼저 맺는 법이 없다. 이런 어긋난 질문을 던지니 수수께끼인 것이다.

이들 수수께끼의 답은 모두 목화이다. 물론 세 번째 수수께끼는 답이 둘이니 목화만이라고만 할 수 없다. 고개 중에 제일 높은 고개는 '보릿고개'이다. 가장 넘기 힘든 고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보잘 것이 없더라도 따뜻한 입성과 솜이불을 마련해 주는 것이 목화이므로 목화가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목화나무에 꽃이 두 번 핀다는 말은 목화꽃과 함께 목화 자체도 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목화 열매가 달리기 전에 연분홍색목화꽃이 핀 다음에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를 흔히 다래라고 한다. 다래가 단단하게 익으면 마침내 터져서 목화가 피는 것이다. 물론 이 목화는 꽃이 아니고 열매의 씨앗이다. 그러나 열매가 벌어져서 흰 무명이 꽃처럼 피어나므로 면화(棉花) 또는 목화(木花)라고 하며 한결같이 꽃으로 인식한다.

목화 꽃이 잘 피면 열매인 다래가 굵게 달린다. 다래가 제대로 맺히면 목화송이도 크게 활짝 피어나는 것이 순리다. 여당 대표가 정권재창출을 당 대표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하였다. 여당이 집권을 하고도 이미 잡은 정권을 잘 수행할 생각보다 다음 정권 잡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것은 다래를 제대로 맺지도 않고 좋은 목화송이를 기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목화 따는 노래를 들어보자.

광 넓고 사래 진 밭에

목화 따는 저 큰 아가

목화는 내 따서 주마

나에 품에 잠들어라

잠들기는 어렵지 않소

목화 따기가 늦어가요

경남 진양 사는 이필수 아주머니 소리다. 10월이 되면 목화나무에 열린 다래가 무르익어서 알밤 터지듯이 하나 둘 터지면 목화 따는 일이 시작된다. 일은 힘들지 않으나 허리를 굽혀서 오랫동안 해야 하는 탓에 아주 지루하다. 노래처럼 폭도 넓고 이랑도 긴 밭에서 목화 따는 일은 더욱 따분하다. 목화 따는 일은 으레 처녀들의 몫이다. 길 가던 총각이 목화를 따 줄 터이니 자기 품에 잠들어라고 유혹을 하자, 처녀는 잠들기 어렵지 않지만 목화 따는 일이 늦는다고 거절한다. 완곡하면서도 명분 있는 거절이다. 사래 지고 장찬 밭에

목화 따는 저 처녀야

부이 부이 내 따 주까

송이 송이 내 따 주까

내사 싫소 내사 싫소

질로 가는 선비거든

질만 보고 갈 탓이지

내 집 물어 뭐하시오

내 집일라 오실라만

구름 서산 넘어서서

안개 서산 내 집이오

예천 사는 최수연 할머니 소리다. 이 노래에서는 '부이 부이' 내 따 주까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목화는 꽃이나 다름없으므로 꽃을 헤아리듯'송이 송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그런데 '부이 부이'는 뭔 말일까. 삶은 감자가 타박해서 마치 분말가루가 일어나듯 하는 것을 두고 흔히 '부(분)이' 난다고 한다. 흰 빛을 내는 채색도 분이라고 한다. '부이 부이'도 이와 같이 목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흰 빛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최수연 할머니는 "목화를 따기 싫어서 도망이라도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화를 따 주겠다는 선비를 마다하며 '길 가는 선비거든 길이나 가라'고 충고한다. 앞의 노래와 달리 목화를 따 주겠다고만 했지 자기 품에 잠들기를 요구한 것도 아닌데, 이를 거절한다. 길가는 선비가 뜻 없이공연히 목화를 따 줄 일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따라서 꼭 찾아오려면 구름 서산 넘고 안개 서산 넘어서 자기 집으로 오란다. 구름 서산도 알 수 없는데 다시 안개 서산을 넘어서 오라니 그것은 이 세상 주소가 아니라 딴 세상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왜냐하면 구름 서산이나 안개 서산에 길이 있을턱이 없기 때문이다. 길 가는 선비가 목화 따는 처녀를 넘보는 일은 곧 길 아닌 곳을 가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적인 은유라 할 수 있다. 하늘에다 목화 갈아

목화 따로 누랑 가꼬

정생원네 맏딸애기

수영도령 둘이 감세

진양 사는 김상기 할머니 소리다. '하늘에 목화를 갈아 목화 따러 누구랑 갈까?' 마치 천상 선녀나 되는 듯 하다. 푸른 가을 하늘에 흰 목화가 핀 양상은 솜털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것처럼 포근하고 평화로운 광경이다. 따라서 목화 따러 가는 일이 지루하고 따분한 일터에 가는 길이 아니라 즐거운 산책이자 발걸음도 가벼운 나들이 길이다. 그러므로 정생원의 맏딸애기는 목화 따러 누구랑 갈까 하고 헤아리다가 마침내 수영 도령과 둘이서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수영 도령은 물론 평소에 사모하던 총각일 터이다. 그렇다면 목화 따러 가는 길이 가슴 설레는 데이트 코스나 다름없다.

빈터에는 목화 심어

송이송이 따낼 적에

좋은 송이 따로 모아

부모 의복 장만하고

서리 맞이 마구 따서

우리 몸에 놓아 입세

예천 사는 전성분 할머니 소리다. 목화 따는 일이 혼자 감당하는 따분한 노동인가 하면, 상황에 따라서는 님과 더불어 하는 꿈같은 나들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목화 농사의 실상은 이처럼 두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분한 노동도 아니고 사랑하는 님과 데이트도 아니다. 목화가 입성을 장만하는가장 긴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소중한 생업의 하나일 따름이다.

따라서 목화를 따는 마음도 다르다. 그저 이것저것 마구 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일찍 맺어 크게 벌어진 좋은 목화송이와, 제대로 여물기도 전에 서리를 맞아 채 벌어지지도 못한 목화송이를 분별해서 따고 가려서 모은다. 그래서 좋은 송이로 가려 낸 양질의 목화로는 부모님 의복을장만해 드리고 서리맞이로 설익은 목화에서 따낸 질 낮은 목화로는 우리 옷에 놓아 입자고 한다. 목화는 무명실을 뽑는 원료이자 솜의 재료이기도 하다.

목화 따는 일을 고역이나 나들이와 같이 엉뚱하게 인식하지 않고 그 본질을 제대로 포착하여 분별 있게 하는 사람은 심성도 착하다. 목화를어떻게 가려서 따고 가려 딴 목화를 누구의 입성으로 장만하는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결코 자기 몫을 챙기는 일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집권층을 보면 목화 따는 큰애기만도 못하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람들이 아무런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와 정권교체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집권과정에서 군부독재 세력인 유신본당과 짝자꿍하더니, 집권 이후에도 끊임없이 부도덕한 세력들과 손잡고 이합집산을 하느라 개혁세력을 외면하고 당내의 국정쇄신 요구조차 묵살하다가 마침내 비서정치에 몰입하고 있다.

게다가 주어진 권력을 잘 행사해서 국민들을 살 맛 나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다음 권력을 넘보는 일에 더 골몰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정권재창출이 가능할까. 가장 확실한 정권재창출은 지금 쥐고 있는 권력을 도덕적이고 모범적으로 행사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 쥐고 있는 권력의 칼자루를 제 멋대로 휘두르는 사람에게 다시 칼자루를 맡길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다음 칼자루를 잡기 위해서도 지금 잡고 있는 칼자루를 잘 쓰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