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비디오와 함께 성장한다. 말문이 트이기도 전에 비디오 보기는 시작된다. 설거지를 하거나, 잠시 낮잠을 자거나,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할 때 아이들이 보채기라도 하면 엄마들은 비디오부터 튼다. 잠을 자지 않고 보채는 아이들에게도 비디오는 특효약이다.
서너살만 되면 한글이다 영어다 교육용 비디오에 파묻혀 지낸다. 자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보다 어떤 비디오를 사 줄까 고민하는 게 대부분의 엄마들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어지간하면 비디오 보는 시간을 정해놓을 정도로 비디오는 아이들의 생활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어떻게 얼마나 보나=비디오는 유아나 초교 저학년들에게 TV 만큼 영향력이 있다. 실태가 어떨까 서대구초교 1학년2반을 맡은 박정옥 교사가 조사를 해봤다. 학급의 39명 가운데 평일 방과 후 주당 2편 이상의 비디오를 본다는 어린이가 11명, 주말에 몰아서 본다는 어린이가 19명이었다. 박 교사는 어림잡아 하루 건너 한 편 꼴로 비디오를 보는 셈이라고 했다. TV 볼 걸 다 보면서 길이가 한시간 안팎이나 되는 비디오를 그만큼 본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디오를 보는 것에 대해 부모님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21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는 어린이는 8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너무 많이 보지 마라" "주인공처럼 되거라" 등 설교 같았다는 게 어린이들의 반응이었다.
◇보기 수업=박 교사는 국어 교과의 말하기 듣기에 수업을 활용했다. 먼저 교실 TV로 로봇 만화영화 '마이크로맨'을 상영했다. 현란한 화면에 시끄러운 효과음, 폭력적인 장면들이 반복됐다. 어린이들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보고 난 후 기분을 물었다. "재미 있다", "기분 좋다" 등이 많았고 "무서운 장면이 보기 싫었다" "눈이 아팠다" 등의 대답도 나왔다.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보게 했다. 좋고 행복한 기분은 밝고 포근한 색으로 곡선을 활용하고, 불안하고 싫은 기분은 직선으로 나타내라고 설명해 줬더니 빨강이나 검정 따위의 원색에 직선으로 그린 아이들이 많았다.
이어서 만화 영화 '스노우맨'을 상영했다. 파스텔톤의 배경에 다소 느린 화면, 잔잔한 음악이 깔렸지만 대사는 없는 영화였다. 내용도 자신이 만든 눈사람과 밤늦은 시간 즐겁게 어울린다는 것. 그런데 어린이들은 '마이크로맨'보다 더 높은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눈은 다소 내려깔렸지만 밝은 색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 교사가 얼른 충고해 유심히 살폈더니 어린이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랐다. 긴장감 대신 포근함과 평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얼굴에 가득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보고 난 후 질문하니 '스노우맨'이 더 재미있고 친구에게 보기를 권하겠다는 아이가 훨씬 많았다. 저학년 대상이었지만 분석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수업 결과는 분명했다.
◇집에서는 어떻게 보여주나=가정에서 좋은 비디오를 구해 자녀들에게 보여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즈니 만화영화나 교육용 비디오라면 무조건 좋은 비디오라고 여기는 부모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비디오 속에도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내용이 적잖이 담겨 있으므로 부모가 먼저 본 후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게 쉽지 않다면 추천 비디오 목록이나 영화 안내서를 구해 보자. 서울YMCA '건전 비디오 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서 제시한 좋은 비디오 목록(http://yvideo.ymca.or.kr/yindex.html)을 참고할 만하다. 보통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찾기 힘들다는 게 부모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일 뿐이다.
비디오를 보더라도 감상 시간을 정해 놓고 보는 게 필수. 혼자서 볼 때도 월별, 또는 일주일 단위로 계획해서 보도록 어린이들에게 습관을 들여줘야 한다. 가능하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비디오를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비디오를 보고 난 후 느낌을 글로 정리하게 하거나 그림으로 그려 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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