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는 첫 르네상스인"

입력 2001-10-09 14:27:00

이탈리아 사람과 결혼, 35년째 그곳에서 살며 모든 유적과 유물을 일일이 다녀보고, 손에 잡히듯이 재구성해내는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르네상스의 여인들','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 지금까지 발표한 자신의 르네상스 저작들을 아우르는 책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한길사)을 내놨다.

제목이 말하듯 르네상스를 창조한 주역들에 관한 이야기로 저자는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이탈리아 3대 도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를 차례로 더듬으면서 당시 주역들을 역사 속에서 불러내고 있다.

시오노는 역사상 예술분야에서 가장 화려한 성과를 거둔 르네상스에 비옥한 토양과 충분한 물과 햇빛을 마련해준 것은 언뜻 보기에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종교인 아씨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와 정치가인 프리드리히 2세라며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손꼽는다. 흔히 이들 이후 인물인 시인 단테와 화가 조토를 그렇게 여기고, 또한 르네상스인의 특질 가운데 하나는 비종교적이라는 점인데 왜 프란체스코회 창설자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보급하는데 평생을 바친 성 프란체스코가 왜 최초의 르네상스인인가.

그는 로마의 신흥 상인계급을 '제3계급'으로 기독교에 편입시켜 이들의 경제 활동으로 종교적 속박에서 해방되도록 했으며, 사제와 수도자, 제3계급, 속인등을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위치시켜 이를 단지 선택의 문제로 여김으로써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를 인정하고 실천, 결과적으로 르네상스로 가는 길을 열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시오노가 보기에 '너무 일찍 태어난 르네상스인'이다. 교황의 강압에 의해 십자군 전쟁에 최고사령관으로 참가하지만 그는 피 대신 이슬람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돌아온다.

계몽군주 역할을 자임한 그는 결국 북부 이탈리아 상공인들의 저항과 교황의 억압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베네치아와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상공업 육성책과 학문, 예술에 대한 적극 지원으로 '정신혁명' 르네상스의 기초를 견고히 했다는 것이 시오노의 견해다.

이 책은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꽃을 피운 3대 도시를 차례로 더듬으며 르네상스를 창조한 천재들의 매력과 그 시대의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르네상스 이론서가 아니라 문명론이자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정치계의 로렌초 데 메디치와 체사레 보르자, 문예계의 단테, 보카치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이루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들을 역사속에서 불러내어 우리 앞에 데려다놓고 있다.

또 책 중간에 오늘날 예루살렘을 둘러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투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살짝 덧붙여 그의 문명관을 엿볼 수 있다. 기독교도에게 성지 순례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려던 십자군전쟁의 애당초 목적이 퇴색해 성지 팔레스타인에 사는 이슬람교도를 몰아내는 것으로 바뀐 것이 충돌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시오노의 책들이 항상 관심을 끄는 것은 이처럼 독특한 역사 해석과 더불어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필요하다싶은 모든 자료들을 일람표나 연대기, 그림이나 그래픽으로 삽입,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흥미를 붙들어매고, 대화체 서술 방식으로 쉽게 읽힐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김석희 옮김. 368쪽. 1만5천원.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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