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선생 부인 이수자씨 '나의 독백'내놔

입력 2001-10-08 14:57:00

"나 없는 그의 삶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내 앞에서 그는 갔다. 그의 숨이 멎을 때까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을 잡은 채 끝까지 지켜보는 나의 눈 앞에서 그는 멀리멀리 떠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지 못하게 지키며 흔들어 깨우는 딸의 정성으로 나는 죽음과 삶을 왕래하다가 결국 삶을 유지하게 되었다. 베를린의 삶은 이제 적막하여 더 혼자 견디기 힘이 든다…(중략) 죽어서도 못 돌아가는 남편의 40년 추방생활을 내가 잇고 있다. 떠다니는 배가 된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어느 곳이 나의 잠자는 곳이 될지 아직도 모른다".

1995년 11월 윤이상 선생이 독일땅에서 세상을 떠난 후 부인 이수자 여사는 '남편의 생애를 쓸 때까지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3년 전 윤이상 전기 '내남편 윤이상'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나온 '나의 독백'(한겨레신문사)은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김일성 주석이 마련해 준 집이 있는 평양을 오가며 북한 사람과 산천을 보고 느낀 감회를 일기처럼 쓴 이 여사의 산문집이다.

1927년에 태어나 일제 식민교육을 받고 해방 후 대학을 다녔으며 61년 독일로 이주하기 전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직생활을 했던 이 여사에게 북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아주 낯선 것이었다.

오늘날 남한을 포함한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해 있는 극도의 개인주의적 사고보다 전체와 국가, 그리고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체질화한 마음가짐에서 이 여사는 분단 50년 세월이 엄연히 존재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곳에도 따뜻한 정이 있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갖출 줄 아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오늘날 남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건강한' 사고방식이 여전히 숨쉬고 있다고 이 책은 묘사한다.

처음 만난 이 여사에게 군밤을 권하는 인민군 병사들의 모습과 이 여사의 평양집에서 시중을 드는 건강하고 예의바른 태도의 젊은 접대원에 대한 묘사 등은 북한사회의 건강한 모습을 엿보게 한다는 것.

생전의 김일성 주석과 현재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모두 윤이상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던 덕에 북한 당국의 특별한 대우를 받아온 이 여사가 자유롭게 북한을 왕래하며 보고 느낀 오늘날의 생생한 북한 사회의 실상과 우리가 몰랐던 독특하면서도 건강한 북한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동백림 사건' 이후 머나먼 베를린 땅에서 조국과는 등을 돌리고 살면서도 끝없이 고국땅을 그리워하며 바그너 오페라 주인공처럼 세상을 유령처럼 떠도는 이 여사의 회한 넘친 삶과 동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문장 마디마디에서 배어난다.

"베를린의 삶은 적막하여 더이상 혼자 견디기 힘이 든다. 나는 다니기 싫어하는 성질이어서 한 곳에서 안착하여 살고 싶으나 살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나의 처지이다. 베를린의 집을 그냥 두고 나는 지금 배가 되어 바다 위에 떠 있다. 그리고 내가 돌아다니는 항구는 베를린, 캘리포니아, 뉴욕, 평양, 이 네 곳이 나의 귀항지이다".

부산 태생의 이 여사는 경남여고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중·고교 국어교사를 지내다가 1950년 윤이상과 결혼한 뒤 독일로 이주했다. 286쪽. 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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