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무(無)태풍의 해

입력 2001-10-04 14:28:00

7~9월에 찾아오는 '무서운 불청객' 태풍은 우리나라에 농작물, 가옥 등 엄청난 재산 피해 뿐 아니라 인명피해도 낸다.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태풍은 36년 8월26일 우리나라에 상륙한 '무명씨'. 당시 1천232명이 죽고 1천642명이 부상당했다. 태풍 이름이 '무명씨'인 것은 태풍 작명소인 미국태풍합동경보센터(JTWC)가 지난 45년부터 이름을 붙여 그 이전의 태풍은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40대 후반 이상의 성인이 기억하는 해방 이후 최대 인명 피해 참사를 낸 태풍으로는 59년 9월15일에 휩쓸고 간 '사라'호를 들 수 있다. 이때 사망.실종 849명에 37만명의 이재민을 냈다. 가장 큰 재산피해를 낸 태풍으로는 87년 7월15일 들이닥친 '셀마'를 꼽는다. 당시 피해액이 4천962억원을 기록했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하는 열대 저기압 중 중심부근 최대 풍속이 17m 이상인 열대폭풍을 말하는데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다. 보통 연간 28개 가량이 발생, 이중 3, 4개 정도가 우리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태풍이 발생하면 종전에는 괌에 있는 미국의 태풍경보센터에서 알파벳 순으로 된 미국식 이름 92개 중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 왔으나 지난해부터 이같은 방식을 폐지했다. 대신 한국.일본 등 아시아 14개국이 각 10개씩 낸 이름을 일본 도쿄태풍센터가 발생순서에 따라 붙인다. 우리나라가 낸 이름은 개미.나리.장미.수달.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나비 등 동식물명이다.

▲올해 우리나라에 해마다 찾아오는 '반갑잡은 손님' 태풍이 한 차례도 찾아오지 않는 '무(無)태풍의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다. 지난 5월11일 발생한 제1호 태풍 '시마론'부터 지난달 29일 밤 대만 부근 해상에서 소멸한 제19호 '레기마'까지 모두 일본이나 대만쪽으로 비켜갔다. 올해 태풍이 오지 않는다면 지난 1988년 이후 13년만에 처음이다. 기상청은 고기압 세력이 일시적으로 약해지는 10월 상순만 무사히 넘기면 올해는 태풍없이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춘분을 기점으로 180일을 전후한 추석 이후에는 태풍이 올 확률이 적다는 것이 통계로도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태풍이 우리나라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8월 중순 이후 연속적으로 발달해 한반도에 걸친 강한 동서 고기압의 억제력 탓이 크다고 기상청 관계자는 말하고 있다. 지난 여름의 무더위에 시달린 국민들에게는 끔찍한 자연의 재앙을 비켜갈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은 한 줄기 청량제다. 미 테러대참사 여파 등으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도 이 나라 지도층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총체적 파탄을 연출하고 있는 중에 그나마 자연이 이 나라를 도우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신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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