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주력해온 '산업화'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줬지만 그와 함께 발전했어야 할 정신문화에 대해서는 소홀히해온 감이 없지 않다. 그 결과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괴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계층간·세대간의 사회적 불균형을 부르는가 하면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허탈과 박탈감에 휩싸이게 했다. 게다가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인문학이 위기를 맞는 상황과 마주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한국학 연구의 총본산을 표방하며 1978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창립 당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에 자극제가 되고, 문화적 흐름을 주체적으로 형성해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구심체가 될 것으로 기대케 했다. 그러나 파행적인 운영으로 본연의 역할보다는 정권의 통치이념을 뒷받침하고 합리화하면서 유난히 정치 바람을 타는 기관으로 표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문연 이사회(이사장 이현재)가 지난달 29일 제12대 원장에 장을병(張乙炳) 현 민주당 최고위원을 선출함으로써 정문연의 독립성에 대한 시비가 다시 거세게 일고 있는 모양이다. 교육부 산하의 이 기관의 원장은 형식적으로 이사회가 뽑게 돼 있으나 추천위원회가 올린 후보 3명 중에서 대통령이 낙점하게 돼 있어 대통령의 입김이 거의 절대적이며, 현 정부 출범 이후 내리 3명이나 정치성 짙은 인사들만 선출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정문연은 창립 당시부터 원장 자리를 정권과 가까운 학계 인사들이 주로 맡아 '정권의 이데올로그 역할을 한다'는 지적을 면치 못해 왔다. 그러나 현 정권처럼노골적으로 정치성이 짙은 인사 일색으로 원장을 뽑지는 않았다. 더구나 역대 원장 가운데 간간이 전직 각료들이 자리에 앉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현직 집권당 최고위원의 선출은 유례가없는 일이므로 시비가 더욱 드세질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현 정부 출범 이후의 두 전직 원장들의 정치적 행보만 보더라도 이 자리가 정치 바람을 많이 탄다는 사실은 자명해진다. 지난해 12월에 물러난 한상진 원장은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이상주 원장은 취임 8개월만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하지 않았던가. 학계에서 안타까워 하는 것은 이 기관의 정체성 문제다. 원장 자리가 정계로 진출하거나 출세를 위한 발판이 되고 있다면 정권 수준의 교육·연찬 기관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겠는가. 거듭나는 정문연을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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