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버스 기사 김형철씨

입력 2001-09-29 00:00:00

김형철(50·대구시 동구 신암동)씨의 차는 추석날 고향으로 가지 않는다. "이쪽으로 틀어 쭉 달리면 고향집이 금방인데…". 하지만 김씨의 고향길은 마음뿐이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김씨는 고교를 졸업한 직후 줄곧 고속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처음보는 이웃들의 고향길만 찾아 달린 세월이 어언 서른해를 넘겼다.

"죽어서 어떻게 조상을 뵈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불효자라고 엉덩이나 맞지 않을까요". 그러나 운전석 유리 너머에 비친 귀성객들의 들뜬 표정을 보면 귀성에 대한 아쉬움은 싹 사라진다.

김씨는 요즘 대구와 광주를 오가는 고속버스를 몬다. 강원도 태백과는 더 멀어졌다. 30년 동안 고향을 등진 죄는 그렇다지만 5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성묘를 못하는 것은 가슴을 더욱 저미게 한다.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는다고 마흔을 넘긴 아들을 볼 때마다 '조심해라'를 연발하던 아버지. 그 아버지도 '운전박사'였다. 아버지는 고 박정희대통령시절 35년 무사고 운전 메달을 직접 받기도 했다. 대를 이은 운전대 집안. 아버지는 국내 운전면허 10위권이내에 들 정도로 빨리 운전면허를 땄다.

30년 동안 귀성길도 많이 변했다. 처음 고속버스를 운전할 때는 명절때만 되면 표를 못구해 쩔쩔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암표도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 명절 기분도 덜해졌다. 버스안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10년전만 해도 버스안에서 명절 분위기가 감돌았다. 모르는 승객 사이에도 고향얘기, 타지얘기를 나누며 시끌벅적했다. 운전대를 잡고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요즘은 찬바람이 날 지경이다. 무뚝뚝하게 앉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예전에 "기사 아저씨 수고 많으셔요"하며 운전대옆으로 가득 쌓이던 음식꾸러미도 요즘은 사라졌다.

"휴게소에서 1분만 늦게 출발해도 항의를 합니다. 버스 기사가 말한마디 잘못해도 인터넷에 오릅니다. 말을 아껴야하니 제 스스로가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30년 동안 실어 나른 사람만도 수만명. '내 덕에 고향길을 빨리 찾은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더 크다.명절이면 하루 20시간씩의 강행군을 하지만 김씨의 얼굴은 늘 환한 웃음으로 빛난다.

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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