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라…"얼핏 군대에서나 들을수 있는 용어 같지만, 지역 게임업체 직원들이 곧잘 내뱉는 말이다. 그만큼 박봉, 긴 노동시간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조적인 독백인 셈이다.
정부가 미래산업인 게임업종에 대한 육성책을 잇따라 내놓았고 게임산업이 매년 성장세를 보이는데도, 지역 게임업계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 않은 듯 했다.
'영세한 규모, 프로그래머 부족, 대구시의 무관심…' 지역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이 세가지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서울에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라며 고급인력과 자금이 몰려들지만, 지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업체는 전국에 2천여개 가까운 것으로 추산되나 지역에는 고작 10여개 남짓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매출을 올리고 있는 업체는 4, 5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업체는 단 한푼의 매출도 없다. 그중 패키지 상품을 출시한 곳은 민커뮤니케이션(대표 김병민)이 유일하고, 다른 업체는 신제품을 준비하고 있거나 외주 제작에 머물고 있다.
장영진(28) 라온엔터테인먼트 개발팀장은 "1, 2억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 중간에 자금 부족으로 제품을 내놓지도 못한채 없어지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영세한 업체로서는 자금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지역 경제사정이나 인식부족으로 투자자 유치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것.
미국의 블리자드사가 100여억원 자금과 100여명의 인력을 투입, 걸작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만들었는데, 고작 몇억원의 자금과 10명 남짓한 인력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이 되겠느냐는 게 관계자들의 푸념이다.
또 지역 대학의 게임관련 학과에서 매년 2, 3백여명의 인력이 배출되지만 쓸만한 프로그래머는 정작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구 전체에서도 실력있는 게임프로그래머는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풍요속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대구미래대 최민규(41)교수는 "10대부터 게임프로그래밍을 배워야 20대에 제대로 쓸수 있는 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업체에서 힘들게 가르쳐 놓으면 좋은 조건의 서울업체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주 울산 등 몇몇 도시에서 고교에 게임과를 신설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지역에서도 이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대구시의 무관심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구시가 게임산업에 대한 투자는 고사하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게 이들의 판단이다. 부산시가 게임'아마게돈'에 20억원을 직접 투자하고 게임리그를 주최한 데다 제주 전주 춘천 등에서 게임축제를 잇따라 유치하고 있는 현상과 크게 대조된다. 한 관계자는 "해도해도 너무한 것 같다"면서 "섬유 기계 등의 기존 산업에 밀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대구시가 조금의 투자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지역업체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만만찮다. 게임업체가 본격적으로 생겨난지 4, 5년에 불과한 데다 지역대학에서 배출하는 풍부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면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는 것.
정현석(30) 대구소프트웨어지원센터 팀장은 "내년초 남구 대명동 계명문화대 자리에 게임, 애니메이션 벤처업체 100여개가 한꺼번에 입주하게 되면 무한한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라면서 "업체간 기술 및 정보교류와 외주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지역 게임산업을 한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구·경북 18개 대학의 게임, 애니메이션 인력 5천여명을 재교육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만 찾으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또 최민규교수는 "행정기관이 정부 지원금을 쓸모 없는 고가장비 구입에만 쓰지 말고, 게임제작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업체에 직접 투자해야만 지역 업계를 살릴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업계 행정기관 등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는게 아닐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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