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이런전쟁'도 있나

입력 2001-09-13 15:02:00

막강한 미국의 자존심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던 날 전세계 인터넷에는 1654년 프랑스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문이 누군가에 의해 올려졌다. '신의 도시에 번개가 떨어질 것이다.두 형제는 혼란에 의해 무너질 것이며 그동안 요새는 아픔을 겪을 것이다. 거대한 지도자는 굴복할 것이며 그 큰 도시가 화염에 휩싸일때 세번째 큰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은유형태의 이 4행짜리속에 나오는 '신의 도시(in the city of god)'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뉴욕을 가리키며 '두 형제'는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을 지칭하고 '그 요새(the fortress)'는 워싱턴의 펜타곤(국방성)을 연상시키고 있다. 누군가가 억지로 꿰맞춘것 같지만 어찌보면 이번 자살 비행테러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세번째 큰전쟁'의 3차세계대전을 예고하는듯한 글귀가 여간 불길한게 아니지만 당시 뉴욕시민들은 '외계인의 침입인가''3차대전이 일어난건가'하고 당황해했다고 하니 괴담으로 치부할수만도 없다. '거대한 지도자'로 지칭된 부시 대통령이 테러범 응징을 단호하게 천명한 것으로 봐 앞으로의 상황은 그 추이를 더 지겨봐야 알겠지만 섣불리 예측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더욱이 미국 ABC방송 등이 사건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인들의 절대다수가 테러단체나 관련국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지지했다고 하지 않는가.이는 이번 미증유의 미국 본토건물에 대한 테러공격은 바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이고 당연히 그 보복을 해야한다는 미국민의 강한 여론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기때문이다. 또 '힘의 외교'로 냉전종식 이후의 세계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정책과도 맞물려 있어 미국의 보복이 어떻게 진행되며 또 그에 맞대응 해올 상대방의 태세에 따라 확전(擴戰)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테러사태는 미국의 막강한 첨단무기와 고도의 첩보기능이 가장 '원시적인 테러'앞에 무력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내 민항기 4대를 감쪽같이 납치해 '가미가제'식으로 밀어붙이는 그 '허허실실'작전앞엔 '핵 미사일'도, 거의 만능에 가까운 미공군 전투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세계경찰로서 신자유주의 기치를 내세우며 패권을 다시 거머쥐려는 부시행정부의 자존심은 '쥐에 물린 고양이 신세'가 돼 버린 것이다. '몇마리의 쥐들'이 일으킨 '이 전쟁'이 성공을 거두면서 앞으로의 전쟁양상은 첨단무기를 앞세운 거창한 전면전이 아니라 도시게릴라성격의 이런 테러로 나타날 것임을 예고한 것에 다름 아니다. 모기떼의 무차별 공격에 코끼리가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시험해본 그 서막에 불과했다고도 볼 수 있다. '사막의 낙타부대'가 신출귀몰하게 그려낼 원시적 테러양상에 그 포커스를 맞추지 않으면 공중도, 지상도, 바다도, 지하까지 이젠 더이상 안전지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최첨단의 미국 첩보기관들을 완전히 따돌린 이번 전쟁을 보면서 '전쟁사고(思考)의 일대전환'이 불가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그동안 수없이 보여준 바로 그 영화같은 현실을 테러범들은 영악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거기에 동원된 건 '자살'을 불사한 '전사들'과 치밀한 사전계획을 짠 '두뇌'뿐이고 나머지는 현지의 민항기와 그 승객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한 것이 전부였다. 불사조(不死鳥)의 다이하드(DieHard)에 나오는 '부르스 윌리스'같은 형사가 단지 그 적수뿐이란걸 할리우드 영화는 이미 그 해답으로 보여준바 있다.

앞으론 최악의 경우'에어포스·원'처럼 대통령이 납치되지 말란 법도 없다. 또 이게 단지 미국에서만 일어나라는 법도 없다. 전세계가 모방범죄와 그 신드롬에 시달릴것이란게

이번 사건이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경제가 재채기하면 한국은 독감이 걸린다는데 그 진원지가 '혹독한 독감'에 걸렸으니 우리 앞날의 처지가 어찌될지 그야말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노스트라다무스의 불길한 예언이 자꾸만 맘에 걸려 찜찜하기 짝이 없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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