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09-13 14:09:00

(36) 미세한 관찰로 온갖

아주 오랜 옛날에 지구는 공룡들의 차지였다. 그럼 미래에는 누가 지구를 차지할까. 개미가 지구를 지배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개미처럼 작은 벌레일수록 생태적 적응력과 번식력이 강할 뿐 아니라 개미는 수준 높은 사회성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미는 9천여종으로서 약 1억년 전 공룡시대부터 출현하여 지금까지 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개미를 우습게 안다.

개미 노래에는 부정적 인식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있다. 개미를 두고 온갖 병치레를 다 하는 중환자 취급하기 일쑤이다. 우리 정치현실을 보는 눈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최근의 당정개편을 두고도 말이 많다. 마치 정부 인사에 큰 기대를 건 듯이 총리유임부터 문제를 삼고 나선다.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가 인사를 여러 차례 했지만 국민적 기대에 부응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개혁주체'니 '거국내각'이니 하는 따위의 새삼스러운 기대를 건 것이 잘못이다. 좋게 보면 잘 된 점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 개미노래를 보면 온통 개미의 허물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개미의 짧은 허리부터 문제삼고 나선다.

개미 개미 불개미는

니 허리가 어째 그리도 짧신하냐

안장 없는 말을 타다

이별이 낙심하여

내 허리가 이리 짧신하네

신안군 박소예 할머니 노래이다. '개미허리' 하면 곧 가는 허리를 떠올릴 정도로 짤록하다. 개미의 전형적인 모습은 바로 이 가늘고 짧은 허리에 있다. 따라서 개미에 관한 일차적 호기심은 허리에 집중된다. 개미의 대답이 그럴 듯하다. 안장 없는 말을 타다가 이별의 상심 탓에 낙마하여 허리가 이처럼 짤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개미는 다른 개미에 비해서 특히 작다. 그래도 안장 없는 말을 타는 기상은 대장부답다. 이별의 가슴앓이 탓에 낙마했다는 대목은 여성적 서정이 넘친다. 물론 이런 정서는 개미의 것이 아니라 개미에 빗대어 노래하는 사람들의 것이어서 흥미롭다.

개미야 개미야 불개미야

불개미가 코가 아퍼

송사를 가자 하니

까마귀야 송사 가자

입이 질어서 못 가겄다

뱁새야 송사 가자

눈이 적어서 못 가겄다

황새야 송사 가자

발이나 질어 못 가겄다

같은 할머니 소리이다. 불개미 코는 불그스레하다. 그러니 코가 아프다고 할 만하다. 예사 콧병이 아니다. 얻어맞아서 아프니 때린 놈을 송사로 걸어 넣을 판이다. 그러자면 증인이 필요하다. 하늘 나는 새들은 땅바닥의 개미들까지 눈밝게 내려다보고 있다. 따라서 까마귀 더러 송사 가자고 한다. 입이 너무 길어서 못 가겠다고 발뺌을 한다. 뱁새도 눈이 적어서 못 간다고 하고 황새는 발이 너무 길어서 못 간다고 엉뚱한 핑계를 댄다. 멱살잡이를 하다가 피탈이 나면 고만 송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 불개미처럼 성질 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만 일로 송사할 것까지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핑계로 송사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예부터 송사는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개미 개미 불개미는

머리에는 투창나고

눈에는 다랏 나고

코에는 비창 묻고

입에는 너리 묻고

입폭시에 팔자 나고

등거리에 등창 나고

자지에는 근지럽고

똥구녁에 옹질 나고

발톱에는 티눈 나고

앞의 소리가 이어진다. 송사 가자던 불개미 몸에 온갖 병이 다 들었다. 머리에는 두창이 나고 눈에는 다래끼가 나고 코에는 비창(鼻瘡)이 나고, 마침내 자지에도 성병이 났는지 근지럽고 항문에도 치질이 생겼는지 치핵까지 솟았다. 어디 한군데 온전한 구석이 없다. 개미에 관한 인식이 아주 미세하고 부정적이다. 어떤 대상이든 이처럼 돋보기를 들이대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성한 곳이 없다. 이러한 인식은 노래 부르는 주체가 병든 몸이라는 자의식의 투영일 수도 있고, 또는 병든 세계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식의 투사일 수도 있다.

개미야 개미야 왕개미야

양수종 다랏에다가

또 양다릿에다가

또 감창에다가

또 임질에다가

전남 장성군 유삼례 할머니의 왕개미 노래이다. 왕개미라고 해서 별 수 없다. 피부에는 수종(水腫)이 나서 여기저기 물집이고 눈에는 다래끼가 났다. 다른 눈에 또 다래끼가 나서 양다래끼인데다가 또 목구멍 안에는 감창(疳瘡)이 나고, 또 임질이라는 성병까지 났다. '또또'가 거듭된다.

네 개미야 개미야

네 몸은 어찌

그렇게 생겼냐

예 열두 가지

병이 들었습니다

다른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정읍 김요지 할머니의 개미타령인데, 처음부터 개미의 형상을 두고 어찌 그렇게 생겼느냐 하고 따지듯 묻는다. 열두 가지 병이 들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온갖 병이 다 들었다는 것을 폭로한다.

목고녁으 다랏나고

섯바닥의 종서나고

똥구녁으 치질나고

배꼽으는 배창나고

등에는 등창나고

손고락으 고질나고

발톱밑이 잔뿌리디링기고

등에는 등창나고

똥고녁으 치질나고

좃대가리는 임질나고

목구멍과 혓바닥에서부터 손가락과 발톱 밑에 이르기까지, 다래끼나 등창처럼 이름을 아는 병이 있는가 하면, 아예 이름 모를 병조차 있다. 별별 고질병을 다 앓고 있는 것이다. 개미의 온 몸을 마치 현미경이라도 들이대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듯이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기이한 모습을 대단한 병세라도 되는 듯 진단하면 이렇게 노래될 수 있다. 마이크로의 시각으로 우리 몸을 들여다보면 몸 속에는 온갖 기생충이 우글거리고 피부에도 진드기와 세균들이 빌붙어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인식도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병적인 것이다. 모든 증상을 병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고치기 어려운 질병이다. 실제로 섣부른 자가진단을 통해서 스스로 병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어떤 세균학자는 자신의 손에 세균이 서식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자신이 만지는 모든 물체들이 세균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서 자살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현실을 병적인 것으로만 보면 실제로 병세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요즘 우리 정국을 부정적으로 진단하면 그야말로 어디 성한 데라고는 없을 정도로 질병 투성이다. 그러나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좀 멀리서 바라보면 건강한 구석도 많다. 경제가 어렵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보다는 한결 나은 데다가 IMF 빚도 얼마 전에 다 갚은 터이며, 정치가 엉망이라고 해도 유신본당을 정부여당에서 퇴출시킨 사실을 큰 진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의 이번 당정개편도 마찬가지이다. 정치도의상 욕먹을 처신을 하고 있는 이한동 총리의 유임도 국정의 안정적 지속이라는 점에서 잘 된 일이고, 여당의원들조차 인적쇄신으로 지목했던 청와대 비서진이 중용된 것도 임기말기에 대통령의 권력누수를 막는다는 점에서 사려 깊은 인사라 할 만하다. 여당대변인의 인사 논평처럼 호의적으로 보면 대통령의 인사는 언제든지 환영할 만한 것이다. 이처럼 정국을 낙관적으로 보면 국민 정서에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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