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고향의 훈풍

입력 2001-09-07 14:38:00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그 고향은 언제나 살아서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도시 속에서 바쁜 생활의 굴레에 시달리다 보면 그 고향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기껏해야 설날이나 추석 명절이 되어서 '민족 대이동'이라는 교통지옥을 겪으며 겨우 고향을 찾는다.

선물 몇 꾸러미를 사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향수에 젖은 그리움은 온통 교통지옥으로 산산히 부서져 버린다. 고향을 찾아 나설 때의 그 의기양양하던 기세는 기진맥진의 상태로 도착하는 고향의 문턱에서 그만 풀썩 주저앉고 만다그러나 새날이 밝으면 역시 고향은 살아서 숨쉬고 있다. 어릴 때 소꿉놀이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멱감던 개울물이 아직도 그 때처럼 흐르고 그 옛날의 송사리들까지도 아직 떼지어 놀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누렇게 익어 황금 물결을 이루는 넓은 들판의 벼하며, 구슬처럼 빨갛게 익은 대추들이 고향의 향취를 물씬 풍겨온다.고향의 인심은 또 어떤가. '순박한 농부'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다. 이것저것 시골의 결실을 트렁크에 가득 실어준다. 짜릿한 매움이 금방 가슴을 저리게 해 줄 것 같은 빨간 고추랑, 아직도 물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토실토실한 알밤을 한됫박 훈훈한 인정과 함께 담아준다.

고향의 인심은 아직도 이렇게 따스한데 도시인은 어떤가. 날로 배가되어 가고 있는 아파트속의 옆집엔 누가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으로만 느끼며 마음을 닫은 채 홀로서기에만 익숙해져 있다.

'이웃 사촌'이라던 우리 선조들의 인정은 이젠 옛날 이야기인가. 고향의 그 따스한 훈풍은 언제쯤 이곳 도시에까지 불어와 살아서 숨쉬게 되려는가.

아동문학가·대구지산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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