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정치가 끼어들면…

입력 2001-08-23 00:00:00

"무슨 일이든 잘 풀려나가다가도 정치만 끼어들면 개판이 된단 말이야". 어떤 친구의 말에 "설마…"하면서 따져보니까 미상불 그럴싸 하게 들린다. 우선 박찬호와 박세리 등이 미국서 펄펄나는가 하면 한류(韓流)가 중국대륙을 휩쓸고 홍콩·대만과 동남아 일대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영화 또한 붐을 일으키고 활력을 되찾는 것도 결국은 정치인들의 입김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여야의원들이 국회 상임위 배정 때 들어가고 싶어 박이 터지고, 그래서 그만큼 정치권의 입김이 드세기 마련인 건교위나 재경위, 정무위가 관장하는 금융, 건설 등 분야치고 지금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그 답은 명백해 진다.

금융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계속 투입되고도 여전히 부실 투성이고 건설회사들중 절반 이상이 지난 3년여 동안 문을 닫은 상태 아닌가. 이쯤 되고보니 정치인들이 아무리 아니라한들 "정치만 끼어들지 않으면…"하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공감케 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는 DJ 집권이래 지난 3년여동안 정쟁만 벌이더니 이제는 내년 대선을 겨냥, 말끝마다 신경전에 흑색선전이요 상대방 비방이다. 경제가 표류하고 대북(對北)외교는 방향을 잃고 보수와 진보사이 남남 갈등은 극에 달했는데도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대권 경쟁에만 영일이 없는 그 모습은 과연 이 나라 사람이 맞기나 한지 참 혐오스럽기조차 하다. 정치는 이제 좋게 말해 필요악(必要惡)정도의 거추장스런 존재가 돼버린 것만 같으니 큰일이다.

우리 정치가 이 꼴이 돼버린것은 무엇보다 3김(金)정치의 후유증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도대체 여당인 민주당쪽만 하더라도 소장의원들이 당정쇄신이니 어쩌니 하더니만 요즘은 DJ 눈치보느라 정신이 없고 자민련쪽은 한술 더 떠 JP를 연호하면서 '대통령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20년 3김정치를 하고도 모자라 또 그 북새통인가 싶으니 신물이 난다.

정치판에는 구조조정도 없는지 80고개를 눈앞에 둔 3김이 밀고 당기고 하면서 신(新) 3김시대의 새판을 짜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에는 차라리 우리가 초라해진다.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에 60년대의 아날로그식 지도자가 활개를 치며 전반을 주도하는 그런 정치에 무슨 희망이 있을지 암담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 정치가 깨어나려면 3김 정치의 굴레를 한시바삐 벗어나야 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흔들리는 원인이 또 있다. 무엇보다 양성된 정치 인재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다른 직업 갖고 일하다 공천받아 당선되면 그만이지 정치인 되는게 별거있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정치도 전문분야다. 나름대로의 경륜을 갖고 반대쪽과 대화해서 설득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민주정치에 대한 소신과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높아야 한다. 그런데 3김보스정치의 결과인지는 몰라도 그런 인재들이 별로 없는것만 같다. 인재난-이게 역시 가장 큰 문제인것이다. 무얼 알아야 면장을 하지, 민주 투쟁만하다 갑자기 국정을 맡으니 걸핏하면 실수요 시행착오다.

현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의 거의 대부분이 실패로 끝나다시피 하는것도 결국은 국민의 정부와 함께 등장한 민주화 세력. 진보세력들이 기대보다 동떨어지게 전문성이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3김의 그늘에서 탈피하는 것과 한시바삐 이 나라를 끌고 나갈 정치 인재를 양성해내는것-이 두가지임을 재삼 부연한다. 우리는 이제 모든것을 이념의 스펙트럼을 통해 보는 진보 세력보다 사태를 바로 보고 대처할수 있는 '양심적인'전문가 집단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만큼 내년 지방선거 때부터라도 어느 당(黨)인가 구애받지 말고 능력있고 전문성있는 후보라면 팍팍 밀어서 정치 재목으로 성장시키는 대업(大業)에 우리 모두 동참해야될 것만 같다. 그렇게 할때 비로소 "정치가 끼어들면 뭐든지 잘풀린다"는 덕담이 인구에 회자되리라 기대해 본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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