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정보화 시대의 반성

입력 2001-08-16 00:00:00

사람은 누구나 올해 보다는 내년에 좀더 부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를 생산 증대 측면에서 조사해 본 결과 1인당 산출량이 해마다 평균 0.1%씩 성장했다는 통계는 흥미롭다. 그런데 18세기 이후에는 성장속도가 급격하게 가속화된 시기가 여러번 있었으니 첫 번째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친 영국의 산업혁명시대였다. 다음이 19세기 중반의 철도시대, 세 번째가 20세기 초에 시작된 전기와 자동차 시대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각 시대 모두 공통적으로 인간의 생활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에 충분한 혁명적인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혁신 없이 성장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훌륭한 역사적 교훈이 아닐수 없다.

무너진 사회적 '신뢰'

한국은 불행하게도 세 번째 기술혁신이 일어날 때까지 깊은 동면을 취하는 바람에 그만 아웃사이더가 되고말았다. 이웃 일본은 뒤늦게나마 세 번째 혁신인 전기와 자동차 시대에 동참하는 바람에 세계적 강국으로 쉽게 발돋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는 법. 여지껏 기술혁신에서는 저만치 변방에 서 있던 한국에도 기회가 왔다. 20세기 후반 IT(정보기술)산업을 바탕으로 한 '정보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한국은 과거의 전철을 더 이상 밟을 수 없다며 정보화 시대에 철저히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예 '디지털만이 살 길'이라고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다. IT에 대한 엄청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 가입자가 순식간에 2천만명을 넘어섰고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2년까지 정부는 구입물자의 100%를 아예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빅뱅'에 가까운 이동통신 산업의 폭발적인 확산은 가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열풍 덕택인가. 우리는 혹독한 외환위기를 겪고도 줄곧 10%대 성장을 유지해 왔다. 오는 23일에는 IMF를 완전 졸업하는 명예로운 우등생이 된다. '정보화 시대'는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의 노력은 현명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리 경제 회생의 금과옥조인 IT산업이 갑자기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IT관련 산업이 세계적으로 급격히 위축하는 바람에 한국경제는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IT산업이 당분간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하니 '신경제' 호황을 한껏 누리려던 우리로서는 허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끝나가는가. 그야말로 거품과 '신기루'에 불과했단 말인가. 갈등은 계속된다.

IT산업의 침체가 일시적 현상인지 '정보화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인지 아직은 국제적 논란거리다. 확실한 것은 멀지않아 또다른 혁신이 일어나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우주의 시대'가 될지 '환경의 시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착실히 준비하는 자만이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의 경제 동향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서는 안된다. 비록 어렵더라도 자기반성을 통해 또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진국이 후진국과 차이나는 것은 난국을 헤쳐나가는 솜씨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IT 사회부작용 초래

이 난국의 타개책으로 정보화 시대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우리는 정보화 시대로 급속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간 신뢰구조의 붕괴, 전통적인 도덕성 해체, 개인주의의 횡행이라는 부작용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말았다. 물적 자본(땅.기계)과 인적 자본(기술.지식)을 맹신하다보니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의 집합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도외시 했다. 언제부턴가 신뢰(trust)없는 사회가 돼 버린 것이다. 교육의 붕괴, 추락하는 도덕, 타협없는 정치, 돈과 권력 앞에서는 정의와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천박한 행태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600년전 중국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나라였다. 활자, 용광로, 수력방적기 등을 서구 보다 앞서 발명했다. 그러나 지금 기술적 진보는 거꾸로 되었다. 서구는 기술을 널리 보급한 반면 중국은 국민들을 믿지 못해 통치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엄격하게 통제, 기술이 확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뢰없는 사회의 결말은 이렇다. 불황의 늪 속에서도 대표적인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잃지않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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