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을 찾아서-영양 연당마을

입력 2001-08-09 14:28:00

◈서석지 조선 민가 3대 정원

일월산 동화재 능선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내를 이뤄 앞을 지나고 대박산과 자양산, 영등산과 봉수산 등 일월산 지맥의 소봉들이 뒤를 부드럽게 감싸 두른 마을.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동래정씨(東萊鄭氏) 집성마을이다. 이 곳에는 산과 강이 그렇게 어우러지듯 마을 곳곳에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자 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서석지(瑞石池.중요민속자료 108호)는 단연 압권이다. 석문(石門) 정영방 선생이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을 토대로 만든 조선시대 민가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이 정원은 조경미가 빼어나 윤선도가 전남 완도에 만든 부용원,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한국 3대 민가정원으로 꼽히고 있다. 서석지 주변에 경정과 주일재, 정문 등 건물을 배치하고 사우단(四友檀)에는 소나무, 매화, 대나무, 국화를 심어 선비의 지조를 보였다.

이 마을은 조선초기 임천과 돌배기, 선바위, 주역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생부동이라 부르다 광해군때 정영방(1577∼1650)선생이 광해군 실정에 벼슬을 나서지 않고 은거 하면서 임천이라 불렀다.

정영방 선생은 1636년 인조 14년에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어지럽자 아예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 동래정씨 집성촌을 형성해 오고 있다.

선생은 산자수려한 자연을 벗삼아 이 곳에서 소요자적하면서 경정(敬亭)과 주일재(主一齋)를 짓고 서석지를 만들어 연못가운데 부용화를 심어 이때부터 연당이라 불렸다.

입암면에서 지방도를 타고 이 마을로 들어서면 남이장군의 무용담이 전설로 내려오는 남이포와 선바위(立巖)를 만나게 된다. 남이포로 흘러내리는 청계천 양편으로 거대하게 형성된 암벽 석문을 지나야 비로소 입촌 할 수 있다.

마을 앞에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왼손에 둥근 약호를 든 약사여래상(경북도 유형문화재 111호)이 있다. 지금은 목이 잘리고 얼굴이 심하게 훼손 됐지만 광배(光背)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이 마을에 서기를 내린다.

서석지를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전통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으며 전면과 좌측에는 요즘 가옥들이 들어섰다. 가장 특이한 점은 집과 집을 연결하는 샛길과 마을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안길이 치밀히 오밀조밀 나있어 화합하는, 의사소통 체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된 정수용씨 고택과 정용상씨의 고택, 만석집안으로 알려진 정종철씨 고택 등 4채는 그 규모가 크고 'ㅁ'자 형을 취하고 있으며 유독 정휘숙씨 고택만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 'ㄱ.ㄴ'자의 혼합 형태다.

하나같이 모든 고택들의 정원(마당)이 넓게 형성돼 있어 마을이 부유했던 것으로 짐작 된다. 마을 서쪽 한 켠에는 정영방 선생을 비롯 네명의 선비들이 모여 천렵과 시를 즐겼다는 사현암(四賢巖)이 있으며 뒤편 야산 숲에는 과거 공부방으로 사용했던 장판각이 전해지고 있다.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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