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좌충우돌 대한민국

입력 2001-07-26 00:00:00

인도(人道)나 병원 복도를 걸을 때 언제나 당황스럽다. 왼쪽, 오른쪽 구분없이 돌진해오는 사람들 때문에 어깨를 부딪히기 일쑤다. 일렬횡대로 다가오는 무리를 만나면 조금은 불쾌하다. 한쪽으로 비켜서야 하고 어떤 때는 이들의 틈새를 통과하는 경우 어색하고 기분이 영 별로다. 대학교 계단이나 복도도 소란스럽기는 거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등산이나 하듯 신발을 쿵쾅거리며 다니고 여학생들은 샌들을 끌기 때문에 소음을 유발하고 있다. 좀처럼 남을 배려하는 여유는 거의 없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利己)가 '걷는 일'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조금 비약하면 '좌충우돌의 걸음걸이'가 아닌가 싶다.

한국사회의 행보가 기우뚱거린다. 어지럽다. 어디 한곳, 빤한 구석이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다원(多元)사회의 다양성은 민주사회의 특성이로되 지금의 상황은 이의 범주가 아닌 혼란의 그 자체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여·야의 대거리는 한마다로 볼썽 사납다. 취중 여성의원의 거침없는(?) 언사(言辭)는 우리의 정치 수준을 다시 한번 가늠케 하고 있고 야당의원이 한 '신문의 비판성 유지에 대한 지시성 발언'은 지극히 정략적이다. 어쩌다가 한국의 언론계가 이 지경, 이 수준의 정치에 의해 농락(?)당하는 꼴이 됐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지식사회의 현상이 안타깝다. 대한변협의 '법치(法治)후퇴'라는 결의(決議)이후의 일련의 사태는 '한국사회의 찢어짐 현상'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대한민국 변호사 65%가 회원이라는 서울변호사회의 이의제기, 변협의 반박 등을 보는 국민들은 '지식인들의 집단도 정치권력에 관련해서는 잡음을 해소하지 못하는 집단'이라고 치부하는게 보편적인 인식일는지 모른다. 어느쪽이든 외부의 힘이나 작용을 완전하게 차단하지 못한 경우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한국 최고지성(知性)의 사회도 시정잡배와 무엇이 다를 수 있는가.

사실 그렇다. 21세기 초입의 한국사회는 갈등의 수준을 넘어선 '좌충우돌사회'로 볼 수 있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좌충우돌의 늪에 빠져든다.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뒤엉킨 좌충우돌 사례는 감사원의 국민 건강보험재정 특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반발로 친다. 감사원 특감은 재정적자폭을 축소보고하고 의약분업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했다며 복지부차관 등 관계공무원 7명의 징계를 요구했었다.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차흥봉 전 복지부장관은 검찰고발 대상에 제외시켰다. 복지부서는 '정치적 책임은 제쳐두고 힘없는 실무진만 손을 본다'며 강력 반발했다. 정치권에서 의약분업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았으면 실시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점을 무시한 실무자 문책은 정치권 바람막이로 관료조직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노동단체의 위험한 통일논의도 좌충우돌이 아닌가 싶다. 북측이 주장해온 연방제로 해석될 수 있는 통일방안에 합의했다니 위험한 접근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낙태시술을 권유하고 태아를 독극물로 주사해 죽게한 의사의 행위는 '찢어진 사회'의 압축으로 볼 수 있다. 7개월 이후는 어떤 이유로도 낙태를 할 수 없다는 모자보건법의 규정 이전의 도덕심의 일탈이 아닌가. 많이 배운자의 탈법(脫法)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세간의 설왕설래의 방증이다.

교총의 정치단체 지향이나 노조출범을 목표로 한다는 교수협의회·전국공무원 직장협의회의 움직임도 주목의 대상이다. 내년 선거정국에서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본질적 개혁보다는 정년 연장, 환원 등 부수적인 요구가 흥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표가 절대우선시되는 상황에서 숫자의 논리가 강해지기 때문에 집단의 제몫찾기로 변질될 것은 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우리는 '일단 챙기고 보자'는 식의 우격다짐에 익숙해있다. 이성적인 논리의 개진은 실종되고 힘의 논리만 지배한다. 원칙부재와 조급증의 복합으로 특징되는 '좌충우돌 대한민국'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언제나 이기는 이상한 구조의 사회다. 원칙을 주장하는 경우 왕따 당하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정권의 국가경영이 원칙으로 이루어지는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제발 원칙대로 하자. 최고의 설득력은 올바른 몸가짐에 있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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