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국자과자' 김남해자 할머니

입력 2001-07-16 14:54:00

◈한쪽눈 안보여도 얼굴엔 밝은 웃음이...대구시 평리동의 한 놀이터. 정오쯤 되자 '국자 할머니'가 느린 걸음으로 나타난다. 기구에 매달려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 할머니 옆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서너 살에서 열 살정도까지…, 그 속에는 중학생쯤 돼 보이는 녀석도 멋쩍은 얼굴로 끼여 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 한 귀퉁이에서 연탄불에 녹여먹던 국자(일명 달고나, 포뜨). 설탕보다 단 과자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던 국자가 세월을 훌쩍 건너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식 이름을 갖게됐다는 김남해자 할머니, 20여년 전 접었던 국자판을 한 달 전 다시 폈다. 연탄불, 국자, 눌림판…모두 20여년 전에 쓰던 것들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년간 공사장 잡부로, 건물 청소부로 살아왔다. 다시 국자 장수를 시작한 것은 체력 때문.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국자판을 다시 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다. 하루 평균 매상 1만원 정도, 잘되는 날엔 1만5천원까지 넘본단다.

"할매, 나는 비행기 모양으로 찍어주이소" 인내심있게 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가 꼭 쥐고 있던 백원 짜리 동전 두 개를 내민다.

"할매 카지 마라" 할머니가 버럭 고함을 친다. 59세,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틀림없이 할머니뻘이지만 아직 할머니는 아니라는 고집이다. 조무래기들은 할머니의 큰 목소리에 기가 죽기는커녕 키들키들 웃을 뿐이다. 고함을 친 할머니도 웃기는 마찬가지.

할머니가 국자판을 다시 편 것은 불과 한달 남짓. 그러나 그는 이 일대 아이들에겐 이미 유명인이 됐다. 놀이터의 조무래기들은 물론이고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학생들까지 설탕과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아이의 성화에 이끌려 나온 젊은 엄마도 슬그머니 끼여든다. 더러는 맛이나 보자 싶은 마음에, 더러는 향수에 이끌려….

"시내는 500원 해. 난 200원이야. 그리고 가스 불이 아니고 연탄불이지" 김씨는 속사포처럼 광고 발언을 쏟아낸다. 젊은 엄마가 마뜩찮은 눈초리를 던지기라도 하면 즉시 설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커는 애들한테는 설탕이 필요해. 이게 포도당이거든, 포도당을 많이 먹어야 애들이 잘 커" 할머니의 홍보방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과자, 집에서는 못 만들어. 이건 특수 국자가 있어야 만들 수 있어" 할머니가 특수국자라며 흔드는 국자는 좀 작고 손잡이가 두 갈래로 갈라졌을 뿐 특별할 게 없었다. 못마땅해하던 젊은 엄마들도 이쯤에서는 웃고 만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유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림 찍은 모양대로 잘라내면 돈 도로 돌려준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이 말에 끌려 부서진 과자를 먹어치우기 바쁘게 찍고 또 찍는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 판매 전략은 때때로 낭패가 되어 돌아온다. 솜씨 좋은 녀석들이 비행기와 십자가를 깨끗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공짜 과자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니는 고만 해라. 오늘 벌써 천 육백원치나 먹었다" 끝없이 공짜과자를 요구하는 얄미운 녀석에게 할머니가 또 고함을 지른다. 며칠 전엔 공짜과자를 4천500원어치나 먹어치운 아이도 있었다고 할머니는 투덜댔다.

김 할머니는 매일 꽁꽁 얼린 오차 물을 3통씩 준비한다. 단맛에 질린 아이들 입을 씻어주기 위해서이지만 이 물만은 공짜다. 놀이터에서 땀 흘린 아이라면 누구나 이 물을 마실 자격이 있다.

"사진 찍자고? 하아, '쪽' 팔려서…" 할머니는 불량소녀같은 말투에 스스로 놀랐는지 또 크게 웃는다.

큰 목소리에 유난히 웃음이 많은 김남해자 할머니. 한쪽 눈은 태어나자마자 시력을 잃었고 남은 눈도 무척 어둡다. 남편은 40대에 간암으로 잃었고 아들은 교통사고로 잃었다. 웃음은 할머니가 잃어버리지 않은 유일한 재산인지도 모른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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