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휠체어 테니스선수 이하걸씨

입력 2001-07-09 15:24:00

7월의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두류 테니스장. 서있기도 힘든 오후 더위 속을 쉴새없이 뛰어다니는(?)는 남자가 있다.

이하걸(29)씨, 휠체어 테니스 세계 랭킹 20위, 한국 랭킹 1위. 휠체어 테니스 경력 7년의 직업선수다. 지난 5월 '대구 오픈 국제 휠체어 테니스 대회'에서 복식 1위, 단식 2위를 차지했다. 이어 벌어진 '재팬 오픈 국제 테니스 대회'에서는 단식과 복식 각각 3위에 올랐다. 현재는 8월 '스위스 월드팀컵 대회'를 대비해 하루 5시간씩 맹훈련중이다. 7월 중순 서울에서 합숙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씨의 서비스와 포핸드는 일품이다. 대포처럼 쏘아대는 그의 서비스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이씨가 장애인 스포츠 층이 빈약한 한국인으로 세계 랭킹 20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 가공할 서비스와 포핸드 공격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이씨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후 오랫동안 방황했다. 그에게 눅눅한 삶의 탈출구가 됐던 것은 휠체어 탁구. 열심히 운동했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땀 흘리는 동안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씨는 운동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땅에서 장애인이 스포츠로 생활을 꾸려 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운동을 그만 둔 그는 울산의 한 금은 세공공장엘 다녔다. 조금도 내키지 않았지만 1급 장애인인 그가 달리 일할 곳은 없었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한국에 휠체어 테니스가 보급됐고 94년엔 대구에서도 휠체어 테니스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하나 둘 빠져나가고 지금은 대구엔 5명, 전국에 50명이 채 안 되요. 다른 장애인 스포츠에 비해 테니스는 여건이 나은 편이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죠".

실제로 많은 장애인들은 테니스를 배우러 왔다가도 수입 경기용 휠체어가 300만원이나 한다는 말에 맥없이 돌아서고 만다. 이씨는 빨리 국산품이 개발돼 좀 더 싼 값에 장비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비장애인도 몸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데 하물며 상대적으로 쇠약한 장애인은 운동이 더 필요하죠. 사람들은 장애가 생기면 운동을 포기하는 습관이 있는데…운동을 하면 몸도 마음도 훨씬 맑아져요". 이씨는 힘들더라도 운동을 포기하지 말라고 장애인들에게 당부했다.

이하걸씨는 대구시 수성구청 소속이다. 많지 않지만 꼬박꼬박 월급도 받는다. 게다가 이씨에게는 후원회가 있어 각종 국제대회 참가비용까지 부담해 준다. 참 운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되지만 그만큼 한국 사회가 장애인에게 인색한 사회라는 말도 된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스포츠를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에요. 일정한 수입이 없고 그렇다고 후원회도 없으니 그만 둘 수밖에요". 이씨는 자신이 세계 랭킹 20위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후원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했다. 세계 랭킹을 유지하려면 연간 평균 10여개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에서는 국가 대표 경기(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만 지원을 해주는 형편이다. 장애인 스포츠가 그다지 인기있을 리 없고 우리나라가 이른바 선진국도 아니기 때문이다.

"휠체어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이 종종 코트로 찾아와요. 경기용 중고 휠체어라도 몇 대 있으면 큰 도움이 될텐데…아쉬운대로 지금 우리가 타는 휠체어를 빌려 줄 용의가 있으니 배우고 싶은 사람은 언제라도 코트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하걸씨는 자신에게 새 삶을 열어주었던 스포츠가 다른 장애인에게도 틀림없이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무료 강습 문의:011-544-8436.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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