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피해 왜 되풀이 되나-농촌현실 외면

입력 2001-06-14 00:00:00

"앞으로 10년 안에 10개의 중소형댐 건설". 건교부는 부족해질 18억t의 물을 확보키 위해서라며 지난 11일 댐 건설 계획을 갑자기 발표했다.

가뭄을 틈 타 반발을 줄이려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 예정지 중 하나인 군위 군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군의회 의장 등 10여명은 12일 서울 공청회에 몰려 가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자 정부는 "타당성 조사에 필요한 예산을 내년에 신청하겠다는 뜻이었는데 신문.방송 보도가 너무 앞서 나가 확정된 것처럼 잘못 알려졌을 뿐"이라며 발을 뺐다. 영주 송리원댐 예정지 주민들도 댐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투쟁위 강성국 위원장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반대 이유 중 하나는 "댐 이익은 다른 곳이 가져 가면서 피해는 현지 주민들에게 집중된다"는 것. 군위 화북댐 예정지인 고로 주민들은 "물을 가두면 이곳 위천이 말라 큰 피해가 날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경주 산내댐은 1995년, 김천 감천댐은 1996년에 그같은 주민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렇게 반대가 심한데도 정부는 어쩐 일인지 대규모 댐 건설에만 매달리느라 몇년씩을 허비하고 있다.

정부와 달리 농민들이 관심 쏟는 쪽은 중대형 저수지. 이번 가뭄을 겪으면서 저수지의 중요성이 특히 절감됐다. 영양군 석보면 원리 이병구(54)씨는 "매년 물 부족 문제를 겪다가 화매저수지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이번 같은 가뭄에도 별 어려움을 모르고 지냈다"고 했다. 청송.영천.군위 등은 강우량이 가뭄 극심 지역과 비슷했으면서도 좋은 저수지 시설 덕분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다.

이때문에 농민들 사이에는 저수지 건설 요구가 적잖다. 청기면 당리 권종호(57)씨는 "저수지가 없어서 이 지역 가뭄 피해가 특히 크자 주민들이 상류 찰당골 저수지 조성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했다. 이 저수지는 올 연말에나 착공될 예정. 영양군청은 2003년까지 물 부족을 완전 해결할 수 있도록 일월(도곡).청기(찰당골).수비 등에 저수지 건설을 바라고 있다. 농업기반공사 영주시지부도 영주 부석.장수. 봉화 물야.오전 등을 건설 중에 있다. 농업기반공사 경주시지부는 양북.감포.양남.산내 등에 저수지 건설을 추진 중이다.

중대형 저수지는 환경 피해나 광역 물 분쟁을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건설 비용.시간이 덜 든다는 강점도 새삼 강조되고 있다. 반대가 많은 영주 송리원댐(2억5천만t)은 중규모에 불과한 댐인데도 건설비가 무려 6천36억원이나 되고 건설에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돼 있다. 그러나 중대형 저수지는 100억~200억원이면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저수지 건설에는 여간 까다롭잖은 조건이 따라 붙어 농민들의 바람을 외면하고 있다. "그 물을 받아 쓸 논밭의 85%가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야 한다"고 전제돼 있는 것. 이렇게 되면 경북 북부 산간지역 중에선 저수지를 가질 수 있는 곳이 몇 안될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봉화 농민들은 이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청송 안덕면 감은리, 파천면 지경리, 진보면 시량리 등도 이런 조건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에선 암반관정 개발에도 다른 곳보다 3배 이상 많은 돈이 들어 농민들 반발이 더 크다. 청송군청 박승환 농지담당은 "장비.돈이 있어도 일부 지구는 아예 물이 없어 가뭄대책을 세울 수 없는 형편"이라며 저수지 건설이 필수라고 했다.

농업기반공사 김규수 영주지부장은 "이번 가뭄을 겪으면서 중대형 저수지 건설의 필요성이 특히 명확해졌다"며, "전제조건을 완화시켜 수요가 있다면 어디든 저수지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정 경주지부장도 "중대형 저수지 건설만이 근본적인 농업 용수난 해결책"이라고 단언했다. 영양군청 전병호 농지담당은 "저수지가 충분하다면 아무 걱정 없을 것인데도 지금까지는 하천이 마르고 난 뒤 해마다 관정을 뚫고 물웅덩이를 파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며, 항구적 가뭄 대책은 저수지를 충분하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청송.김경돈기자 kdon@imaeil.com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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