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르포-경주문화재 대책 전시용

입력 2001-06-01 00:00:00

경주가 사적지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적지구 등에 묶여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땅을 국가가 사들여라"고 성과 없는 요구를 되풀이 하느라 목이 쉰 반면, "뭔가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잇따라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

그런 한편에서 사적지들은 그것대로 관리 부족으로 또다른 몸살을 겪고 있다.

◇힘겨운 보존구역들 = 소금강산, 낭산, 선덕여왕릉 주변 등 주요 사적지에 솔잎혹파리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것은 수액을 빨아먹어 결국 나무 전체를 고사시키는 해충. 200ha 면적의 25∼40년생 소나무 1만2천여 그루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 역시 구제에 애를 먹고 있다.

보문단지 관문인 월성동 주민들은 파리·모기떼에 시달리고 있다. 방역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 5월말~8월말 사이의 연막소독은 겨우 낡은 방역차량 1대가 전담, 잘해야 3~4일에 한번씩 하루 2시간 정도 소독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이 사적지 등으로 묶여 있어 건물 증·개축이 안되는 생활불편 때문에 주민들이 떠나 가고 있다. 최근 인구는 일년 사이 또 400명이 줄었다. 경주 시가지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감소하는 곳.

남강호 월성동장은 "건축 제한이 많은데다 방역마저 제대로 못해 원성이 많으나 장비 부족으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남산 국립공원식 관리 필요 = 국립공원 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면서도 남산은 체계적 관리가 안되고 있어, 국립공원 관리공단으로 관할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로선 전담 관리 기구가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산불의 경우, 동남산은 월성동, 서남산은 탕정동·내남면이 나눠 감시를 맡고 있으나 인원 부족으로 사실상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 4년 전에는 대형 산불이 나 70여ha가 탄 뒤 상처가 아직도 흉물로 남아 있을 정도.

경주대 환경조경학과 최재영교수는 "경주시청의 재정·인원만으로 남산을 관리하기에는 문제가 많다"며, "역내 국립공원 8개 지구 중 남산 지구만이라도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업무를 이관시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무턱댄 보존 조치에 주민만 피해 = 장기간 문화재 보호구역 등으로 묶여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못하는 시민들은, 국가에서 땅을 빨리 매입 처리하든가, 아니면 재산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분지역으로 고시된 쪽샘지구는 정비계획이 표류하면서 460여 가구는 재산상 엄청난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물 증개축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 마을이 퇴락하고 있다는 것. 이때문에 시청에선 1980년대에 정비 기본계획을 세웠으나 자금 부족으로 백지화했었다.

주민들은 "정비가 안되면 '주촌'이라도 조성해 관광자원화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계에선 쪽샘지구를 옛모습 대로 재현하려면 고려온돌 유적, 귀틀집, 대장간, 마굿간 등 유물관도 만들어야 하고, 주막촌을 겸한 공원, 토속성 짙은 전통적 환경 조성, 특유의 음식 개발 등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시청 송운석 문화재 담당은 "내년도에 땅 매입비 전액을 배정토록 문화재청에 요구하긴 했으나, 정책적 배려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데도 작년 7월 문화재 보호법령이 더 강화된 데 이어 고도보존법 제정까지 추진되고 있을 뿐 땅 매입 등은 대책 없이 표류하고 있다. 박숙동(54·손곡동)씨 등 시민들은 "문화재지역 경계에서 500m 이내이면 건축 때 별도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으나 시민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했다.

◇보상성 개발 정책 조차 표류 = 경마장 건설은 대상 부지의 사적지화 이후 대체 부지조차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여기다 강변도로 개설, 신라문화권 종합개발 등도 10여년째 표류하고 있다. 세계 태권도공원 건설도 결정이 오는 9월로 미뤄지고 있어, 시민들은 벌써부터 "이마저 헛일이 되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던지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경부고속철 경주 노선도 "현 정권이 있을 때 조기 착공되지 않으면 또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며 불신하고 있다. 시민들은 "정치권이 하도 신뢰를 잃어 어느 정권도 표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했고, 경마장 건설사수 추진위 김성장 사무총장은 "수십년간 사유재산권을 침해 당하면서까지 문화재를 보호해 온 시민들을 이렇게 속일 경우 내년 선거는 보이콧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주·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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