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럴듯한 논이 됐지만 4년 전만 해도 풀 포기뿐이었지요". 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김원주(45)씨는 버려진 논 3만평을 개간, 논농사를 짓고 있다. 요즘은 모내기를 위해 새벽 동이 틀 때 트랙터를 몰고 나가, 해진 후에야 돌아오기 일쑤인 그의 눈가에는 땅에 대한 사랑이 그득했다.
김씨가 올해 계획하고 있는 벼 경작 면적은 4만5천여평. 150평이 한 마지기인 포항식 계산으로는 무려 300마지기에 달하는 규모. 지역 최대 농가인 셈이다. 그 중 김씨 땅은 9천평. 나머지 논은 모두 남의 것이다. 6천평은 농업진흥공사로부터 빌렸고, 3만여평은 버려져 있던 휴경 논을 개간한 것.
"부동산 바람이 불 때 도시인들이 현지 확인도 않고 사 버려둔 것들이지요. 틈 나는대로 하나 둘 개간, 땅심을 돋운 후 모를 심었습니다. 헤진 논뚝을 새로 만드는 등 고생도 엄청 많이했지요". 그의 손을 거친 뒤엔 이제 평균 이상 생산량을 내는 옥답이 돼 있다고 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땅을 일정 기간 안에 팔아야 하도록 돼 있는 규정 때문에 땅 주인들이 처음엔 오히려 매달리던군요. 그러나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자 다음 해부터는 임대료 얘기가 나왔었습니다". 그 마음도 이해하자 싶어 지금은 일정비율 만큼 쌀을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김씨가 연간 생산하는 벼는 2천여 가마. 자재대.임차료 등을 빼고도 한 해에 8천여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수입으로만 따진다면 대기업 중견간부가 부럽잖은 수준. 그러나 그는 "형.동생.누나 등 7남매에게 쌀을 보낼 때에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부산서 공고를 졸업한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1980년 귀향한 그는 그 많은 농사를 부인(43)과 단 둘이서 짓는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일손 부족. "딴 사람 논에 트랙터로 일을 해 주면 마을 사람들은 품앗이로 갚습니다. 그렇게 하는 면적이 3만평쯤 됩니다". 묘안을 찾아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때 김씨가 농기계를 몰아야 하는 면적은 무려 7만7천여평에 이르게 된다.
이제 그는 귀농 때 꿈꿨던 '언덕 위의 하얀 집'도 마련했고, 통장에 소록소록 돈이 쌓여 가는 기쁨 또한 만만찮다고 했다. "늘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시간나는 대로 고생하는 아내와 나들이도 나가곤 합니다". 힘든 뒤에나 찾아 올 수 있는 즐거움일 터. 한 마을에 사는 80 노모를 극진히 모셔 효자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그는 "예나 지금이나 농삿일은 힘든다"고 했다. 아직은 노력에 비해 소득이 낮다고도 했다. 농사가 근본이라면서 농민을 살리는 정책은 왜 나오지 않는지 아쉽다는 것. "벼 2천여 가마를 생산해도 매상할 수 있게 할당된 몫은 불과 200가마 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마을의 김염(65) 이장은 김씨를 농업에 관한한 선구자라고 했다. 농기계 사용, 품종 개량 등 마을에 전파한 기술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포항.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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