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시집을 가더라도 아들을 못 낳아요, 아∼ 미운 사람".
동네 골목골목 널려있는 게 노래방이다 보니 이젠 친척모임에서도, 동창회서도, 집들이에서도, 노래는 빠질 수 없는 필수코스가 됐다. 술잔이 한 순배 돌고 흥이 무르익으면 사회자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노래를 권한다. 아니 거의 강제적이다. 술잔은 피할 수 있어도 노래만큼은 어림도 없다. 그보다도 '시집 못간다'고, '아들 못낳는다'고 악담을 퍼붓는데(?) 어떻게 노래안하고 배기랴. 어쩌다 남편회사에서 모임이라도 있는 날엔 걱정부터 앞선다·'노래 시키는 사회'에서 노래부르기가 두려운 음치아줌마들은 그래서 괴롭다.
그래서일까? 아줌마들이 노래교실로 몰린다. 덩달아 주부노래교실도 뜨고 있다. 관공서 문화강좌, 백화점, 농협, 새마을금고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평생교육강좌로 노래교실이 마련돼 있을 정도다.
대구시 칠곡농협 관음지소 5층 대강당. 매주 수요일이면 200여명의 주부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로 가득 찬다.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아이들도 어느 정도 키웠으니 이젠 '내 생활'을 찾으려는 나이다.
지난 9일에도 이곳에서 아줌마들이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쉬운 노래들. 경쾌한 리듬에 상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론 애잔한 멜로디에 눈물짓기도 한다. 노래 속에 사랑이 있고 기쁨도,슬픔도 있다. 자신들의 인생이 녹아있는 듯 몰입한다.
아줌마들이 노래교실을 찾는 첫 번째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 매일 반복되는 가사에서 벗어나 일주일에 한번 노래를 부르며 일상 탈출을 시도한다. 강좌 끝부분의 흥겨운 트로트시간이 기다려지는 것도 이때문. 이때는 한껏 신명이 올라 박수치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도, 주부가요 프로그램에 도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래도 매주 꼭꼭 참석합니다. 일주일치 스트레스를 확 털어버릴 수 있어서죠".
노래 부르다보면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가 웃음을 부른다. 입담 좋은 강사의 넉살에 강당이 떠나가라 쏟아지는 요란벅적한 웃음소리…. 그러다 노래 부르고, 한 곡이 끝나면 또 와르르 웃는다.
강사의 전자오르간 소리가 빨라진다 싶더니 어느새 '남행열차'분위기. 갑자기 앞줄에 앉아있던 이재향(58·대구시 북구 태전동)씨가 벌떡 일어나 몸을 흔들어댄다. 나이도 잊은 채 어떻게 저렇게 야한 춤을 출 수 있을까? 하지만 요즘은 음치보다 춤 못추는 '몸치(癡)'가 왕따당하는 시대. 음치뿐 아니라 몸치까지도 벗어난 아줌마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넘친다.
노래부르기의 매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 지도강사 박영재(38)씨는 "노래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이것이 부부간의 적극적인 대화로 이어져 금실이 좋아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1997년부터 노래교실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박순화(37·대구시 북구 읍내동)씨. 박씨는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을 노래를 통해 바꾼 경우다. 몇 년간은 강사와 말 한마디 하지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면서 달라졌다. 자신감이 생기고 점차 사교의 폭이 넓어지면서 지금은 노래교실 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활발해졌다.
노래교실 출석 3년째인 박경순(45)씨도 노래로 활력을 되찾은 경우. "유방암을 앓은 후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어버렸죠. 그러나 노래를 부르고부터 생활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박씨의 요즘 고민은 불어나는 살과의 전쟁. 성격이 밝아지고 마음이 편해지다 보니 자꾸 살이 붙는다고 했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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