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서 다이제스트-이광주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입력 2001-05-07 14:27:00

'예술이 낳은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운 건축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 (윌리엄 모리스)

중세 유럽의 사본(寫本) 문화로 꽃핀 책의 출발에서부터 20세기 초 탐미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서적 제작의 명장 윌리엄 모리스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책'의 역사와 이를 둘러싼 책 문화에 얽힌 이야기를 두루 소개한 책이 나왔다.

유럽 지성사 연구에 평생을 보낸 이광주(인제대 명예교수)씨가 쓴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한길아트 펴냄). 이 산문집은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과 동서고금의 문화사 전반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책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유럽 문화사를 통찰하고 있다.

저자는 런던의 고서점들, 450년 역사의 케임브리지대 출판부 서점, 독일 하이델베르크 광장의 바이스 대학서점, 도쿄 기노쿠니야 서점 등 각국의 고서점을 순례하고, 갖가지 책과 책에 얽힌 이야기들을 단아한 문체로 풀어낸다. 저자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꼽은 책은 모두 4권. 중세 사본문화가 낳은 최고의 호화 미장본인 베리 공작의 '호화 시도서(기도를 위한 교본)'가 그 첫째. 1500년까지 초기 인쇄본을 지칭하는 요람본 가운데 최고 명품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와 현대 호화본의 최고 명장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제작된 '제프리 초서의 저작집', 20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책 '샤갈의 그림성서'가 그것이다.

장서가 열전도 흥미진진하다.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첫 문예 후원자인 코시모 메디치를 비롯 애서가이자 독서가였던 나폴레옹, 성직자 신분이면서 고서점 주인으로 변신해 희귀본을 탐내 여러 소장가를 살해하고 교수형을 받은 에스파니아의 한 신부 이야기, 아끼던 희귀본을 팔아넘기고 곧바로 그 뒤를 쫓아가 손님을 살해한 후 책을 도로 찾은 고서점상의 이야기 등 장서광에 얽힌 사연들을 담았다.

책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책의 순례를 통해 저자가 얻은 결론은 '아름다운 책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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