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씩 물러서면 아내·남편 모두 승리자

입력 2001-04-30 14:21:00

"주로 애들 교육문제로 많이 다투는 편이죠. 아이들 버릇이 나빠도 엄마 탓, 공부를 못해도 엄마 탓으로 돌려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1993년 결혼한 김연숙(가명·35)씨는 오늘도 우울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제도 아이들 문제로 남편과 티격태격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아이들에게 늘 악역만 맡아오던 누적된 불만이 그만 터져버렸다. 그걸 몰라주는 남편이 어제만큼 야속한 적도 없었다. "처음엔 별 것 아닌 일로 싸움을 시작하죠. 그러다 서로 감정을 상하게 되고, 말꼬리를 잡다보면 큰 싸움으로 번집니다"

처음엔 칼로 물베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갈등을 겪고 다투고, 그러면서 사랑을 키워간다고 하지 않던가. 싸우지 않는 부부는 정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애써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들어 부쩍 다툼이 잦아지는 것 같다. 이웃집 부부들은 허물없는 친구같이, 때론 오빠같이 다들 다정해 보이는데 왜 우리부부만 물과 기름처럼 냉랭할까? 우리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함을 감출 수가 없다. 이번엔 후유증이 오래 갈 것만 같다.

부부싸움은 대개 큰 문제보다는 김씨의 경우처럼 사소하고 극히 일상적인 불만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남편이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놓은 양말짝을 보기만 해도 속이 부글거리고, 앉은 듯 누운 듯한 자세로 TV보는 버릇도 짜증나게 만든다. 심지어 치약을 중간에서 눌러 짜는 것도 싸움의 발단이 된다.

결혼연수에 따라 부부싸움의 원인도 달라진다. 결혼 5년 이내인 부부가 다투는 원인은 주로 '시부모'와 '돈'때문. 그러나 결혼 5년 이상인 경우에는 '자녀'와 '시부모'의 순으로 자녀교육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부모'가 원인이 되는 경우는 연령에 따라 그다지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건강한 싸움은 오히려 활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싸움은 문제가 심각해진다. 가정문제 전문가들은 부부싸움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대화에 힘쓰는 것이 첩경이라고 강조한다. 부부싸움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이긴다는 것은 한 쪽이 희생돼야 한다는 의미니까. 그래서 두 사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윈윈(win-win)식의 해결책을 찾을 것을 권고한다. 물론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서로가'왜 나만 늘 양보해야 하는거야?'하는 생각을 접으면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가운데가 눌려있는 치약을 보고 속상해 하기만 할 것인가? 밑에서부터 다시 잘 짜 올려놓는 것은 어떨까?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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