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입력 2001-04-30 14:55:00

(18)밭을 일구며 사는 가난한 농부들의 노래

옛말에 '농부는 두더지'라고 했다. 흙을 파먹고 사는 농투성이들의 삶을 두더지에 빗대어 말한 셈이다. 농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토지와 씨앗이다. '농부들은 굶어죽어도 씨오장이는 머리에 베고 죽는다'고 할 정도로 씨앗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갈무리한다. 그러나 토지는 씨앗과 달라서 이미 주인이 정해져 있고 세습적으로 상속되고 있다. 따라서 토지가 없는 가난한 농부들은 주인 없는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들든지, 아니면 산골에 들어가서 화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처럼 농지를 개간하고 묵은 밭을 갈아엎는 일을 흔히 '따비질'이라 한다. 정치개혁도 묵은 정치를 따비질하듯 갈아엎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금 묵은 정치인들이 준동하고 있다. 정치 따비질을 거꾸로 하는 탓이다. 따비질 노래부터 들어보자.

이라자라 써레질 / 묵은 밭에 따부질

어디만큼 간가 / 당당 멀었네

이라자라 쟁기질 / 묵은 밭에 따부질

어디만큼 간가 / 당당 멀었네

진도의 조공례 아주머니가 부른 따비질 노래이다. 따비는 나무로 길게 깎은 막대 아랫부분에 말굽쇠 모양의 쇠날을 박고, 가운데 부분에 가로로 발판을 끼워서 두 발로 올라 설 수 있도록 고정시켜 두며, 제일 윗부분에 역시 발판처럼 손잡이를 달아 둔 가장 원시적인 농기구이다.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아서 쇠날을 땅에 깊이 박은 다음 손잡이를 뒤로 눌러 떠엎거나 손잡이를 옆으로 비틀어서 땅을 일구는 작업을 따비질이라고 한다.

묵정 밭이나 개간할 땅은 흙이 단단하게 굳어 있고 잔디와 나무뿌리가 얽혀서 쉽사리 갈아엎을 수 없다. 써레질은커녕 쟁기질조차 불가능하다. 따라서 끝이 뾰족한 따비로 땅을 일굴 수밖에 없다. 마치 큰 꼬챙이로 땅을 찔러서 파헤치는 것과 같아서 노력에 비해 일의 성과는 적다. 그러므로 받는 소리는 '어느 만큼 갈았는가, 아직도 당당 멀었다'고 하며 일의 지루함을 읊조린다.

산따비야 ㄴ.ㄹ려들라 / 요 따비로 요 밭 갈자

산범ㄱ.ㄱ찌 ㄴ.ㄹ려들라 / 소악소악 ㄱ.ㄹ겨들라

요 놀레로 요 일 ㅎ.저 / 요 놀레로 요 일을 ㅎ.자

정강이 아판 못ㅎ.ㄹ로고 / 요 놀레불렁 요 밧을 이기자

자던 아기 일어나듯 / 요 놀레불렁 요 일 ㅎ.ㄹ 적

정신 다ㅎ.영 못ㅎ.ㄹ로고 / 요 놀레로 ㅎ.여보자

제주도 김대옥씨가 실제로 따비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불렀다. 제주도에는 아직 따비가 있고 최근까지 따비질을 하였다. 한 행을 부른 다음에는 반드시 '힛!'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이때 따비를 땅에 박기 위해 발판에 힘을 준다. '산 따비야 눌러 달라'고 주문을 외우듯 앞소리를 한 다음에 '힛!'하고 두 발로 발판을 밟고 온 몸을 실어 따비날을 땅에다 박는 것이다.

계속해서 '산 범 같이 눌러 달라고' 하거나 '소악소악 갈겨달라'고 하여, 범처럼 날래게 눌러서 따비가 땅 속으로 깊이 갊아 들어가도록 기대한다. 따비질 노래를 부르면서 신명을 돋우긴 하나, 얼마 하지 않아서 정강이가 아파 하기 어렵다고 따비질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ㅍ.ㄹ 아판 못ㅎ.ㄹ로고나' 하며 팔의 고통도 호소한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며 따비질로 밭을 일구면 '자던 아기가 벌떡 일어나듯' 굳은 땅이 불쑥불쑥 일어나니, 정신을 다하여 따비질을 열심히 해보자는 권면의 뜻도 잊지 않는다.

앞집이 동무들아 / 뒷집이 동무들아

팔밭 뒤질 가자스랴 / 팔밭 뒤질 갔네

이 골에 뒤져 저리 뒤져 팔밭

경주 최남분 할머니가 부른 메밀노래 앞부분이다. 메밀 씨를 뿌리기 전에 팔밭, 곧 화전 만드는 작업을 먼저 한다. 개간할 때는 물론, 쟁기로 갈다 남은 구석진 땅을 일굴 때에도 따비질이나 괭이질을 한다. 청동기에 따비질하는 모양이 음각되어 있고, 고분발굴에서도 따비의 날이 여러 곳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면 따비의 역사는 퍽 오래 되었다. 따비가 발전하여 괭이와 쟁기가 등장하였다.

이~런 아람마마 / 어조이 다부 나요라

어~조이 아나 마마마마 / 어~ 소야 이러진다

어~ 소야 저 소야~ / 어~ 썩 물러서거라~

팔밭을 뒤지거나 밭을 개간할 때에는 따비나 괭이를 쓰지만, 일군 밭을 경작할 때에는 소의 힘으로 밭갈이를 한다. 특히 화전으로 일군 밭에는 나무뿌리와 돌부리가 많아서 두 마리 소가 쟁기를 끌도록 하는데, 이를 '겨리'라 한다. 평지에서는 주로 소 한 마리가 쟁기를 끄는데 이를 '호리'라 한다. 양평 사람 김창호씨가 부른 것이다. 겨리로 쟁기질을 하며 두 마리 소의 진행방향을 지시하고 걸음걸이를 재촉하는 말이므로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대목이 많다. 쟁기질하는 사람이 소에게 하는 말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허라~이 흘러서~ / 안섶으로 들어서~

저 뽕낭게 몸 닿지 않게~

저마라 소~ 발 닿지 않게 우겨주게~

어린 거는 왜 이렇게 넘나들어오고

늙은 소가 우겨~ 줘~

횡성군 김정복씨의 밭가는 소리이다. 쟁기를 끄는 소에게 여러 가지 작업 지시를 노래로 한다. 강원도 소들은 주인이 소몰이 노래를 불러야 움직인다고 한다. 말귀를 알아듣는 셈이다. 뽕나무를 다치지 않게 안섶으로 들어서라는 지시이다. 아마 늙은 소가 오른 쪽에서 끄는 데 어린 소가 갈팡질팡하니, 늙은 소에게 바른 길로 들어서서 길잡이 노릇을 하라는 뜻으로 '우겨~ 줘~' 하고 다그치는 모양이다. 이러 츳츠츠츠츠츠 / 이려 츠츠츠

어 이려 츠츠츠 물러서~/ 어이 물러서~

어이취 물러서~ / 어야 어서 가자

올러서 나가~ / 어이취 가자

횡성군 황덕교씨 노래이다. 걸어가는 소를 잘 가도록 재촉할 때에는 어느 곳이나 주로 '이랴!' 하는 말을 쓴다. 이 말을 반복해서 쓰는 것이 번거로울 때, '이랴! 쯧쯧쯧…' 하며 혀를 계속 차서 독려를 한다. '어이취'는 '옳지!'에서 비롯된 말 같다. 소의 행동을 잘 한다고 격려할 때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쟁기를 돌리기 위해 물러서라고 하여 소가 말귀를 알아듣는 듯 하자, '옳지 물러서'라고 한다. 소를 몰고 밭둑으로 올라설 때 '올라서서 나가자'고 하며 역시 '옳지 가자'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할 수 있는 밭은 따비질로 땅을 부드럽게 일구어 놓은 밭이다. 개간의 단계나 묵정밭을 일구는 데에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따비질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의 밭을 일구는 정치개혁도 마찬가지이다. 따비질하듯 더디 일구어도 제대로 일구어야 한다. 정강이가 아프고 팔이 저리더라도 따비날을 깊이 박아 군부정권의 폐단으로 굳어진 비민주적 정치판을 뒤집어엎어야 민주적인 정치개혁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지금 정치판을 보면 정치개혁은커녕 오히려 정치현실을 이전보다 더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보다 더 문제가 우리들의 정치현실 왜곡이다. 교과서 왜곡은 이미 이루어진 역사를 사실과 다르게 기록하는 데 머물지만, 지금 우리는 현실역사 자체를 잘못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3당 연합대표인 김중권·김종호·김윤환 등은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 민정당 창당 멤버다. 지금 우리 정치는 박정권과 5공정권의 실세들이 장악한 꼴이다. 김대중 정부는 지금 역사교과서 왜곡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 자체를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우리 역사는 정권교체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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