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출석 안부르십니까?"대학생들이 교수에게 수업 출석 체크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것도 1학년들이. 그 중에는 연구실로 찾아 가 출석 체크의 필요성을 교수에게 조목조목 '강의'하는 학생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료간의 경쟁 상황이 그것. 학부제 실시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2학년 올라 갈 때 성적순으로 학과 선택권을 주면서 생긴 현상. 출석도 안하고 빌려 배낀 강의노트로 시험 쳐 좋은 학점 받는 얌체족들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부제가 몰고 온 변화
"대학 입시 치를 땐 학부제가 좋은 줄 알았죠. 특정 학과를 가고 싶어도 점수가 모자라는 학생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일년이라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단 입학하고 난 뒤 1학년 때 부지런히 공부해 원하는 학과에 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지요". 경북대 국문학과 4학년 김지연씨가 전하는 분위기. 그는 '동양어문학부'로 입학했다고 했다.
김씨의 말은 대학측 조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작년에 영남대가 신입생 1천5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5.8%가 '학부제는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이유는 전공학과 선택에 일년이라는 기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들 중 68.2%는 학부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고 했다. 그 전 해의 63.0%보다 높아진 것.어쨌든 학부제는 이런 특성 때문에 술집·당구장·오락실로 몰려가던 신입생들을 도서관으로 되돌아 가게 하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학 1학년 시절을 '전공 학과 진급 시험 준비 기간'으로 변질시킨 면은 어쩌지 못할 한계로 드러났다. 1학년 때의 성적이 나쁘면 가고 싶은 학과에 갈 수 없기 때문. 할 수 없이 바라지도 않던 엉뚱한 학과에 가야하게 된 대학생들 중엔 휴학한 뒤 대학입시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잖다. 학부제가 전공 선택과 관련한 경험과 기회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전공 입시'의 또다른 과정을 창출했다고나 할까?
◇선후배 관계의 단절
더욱이 학부제라는 새로운 환경은 대학 풍토까지 바꿨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선후배 관계의 단절. 적잖은 고학년생들이 "1, 2학년 시절에는 선배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학부제 이후 1학년은 아웃사이더가 됐습니다. 성적이 나쁘면 아예 학과 배정을 못받는 '미배정제'까지 도입된 뒤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희망학과 1, 2지망에 모두 다 떨어지면 그렇게 되지요. 물론 그래도 원하는 학과의 수업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학과 후배로는 인정받지 못하죠. 그 외에도 이래저래 학과에 소속감을 잃고 무관심해진 아웃사이더들이 점점 느는 추세입니다".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2년 홍정민씨는 학부제가 몰고 온 '주변인 현상'에 주목했다. 학년 대표 등 외의 절반 이상이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 옛날에 1학년은 학과 MT나 체육대회 필수 멤버였다. 귀여움도 독차지했다. 유대감이 지나쳐 야구 방망이를 휘두름으로써 집단 구타로 비쳐지던 시절까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야말로 옛말. 1학년에겐 선배들조차 오라가라 할 수 없다. 아직 후배로 확정되지도 않았기 때문.
그 한편에서 1학년생들은 그저 운이나 바랄 뿐이다. 운이 좋아 원하는 학과의 생활반에 편성되면 다행. 엉뚱한 생활반에 묶이면 일년간 가고자 하는 학과의 선배 그림자조차 볼 기회가 없다. 그러다 전공학과가 정해져 2학년으로 진급하고서는 '늦깎이 신입생' 노릇을 해야 한다. 취업준비에 골몰하는 3, 4학년도 뒤늦게 만난 '2학년 신입생'과의 대면이 겸연쩍을 수밖에 없다. 선후배가 장래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일 터.
◇아웃사이더 1학년
아웃사이더가 돼 버린 신입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동아리로 향한다. 영남대 경우, 올해 동아리 신입생은 무려 2천900여명에 달했다. 작년 1천400여명의 2배가 넘는 숫자.
그러나 이들이 모두 고스란히 동아리에 남는 것도 아니다. "처음엔 정 붙일 곳을 찾아 동아리에 많이 가입합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실망하거나 도움이 안된다며 발길을 끊지요. 좋은 학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은 공부 쪽으로 돌아서고, 어떤 학생들은 아예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기도 합니다". 영남대 아동학과 2학년 김보경씨도 신입생들의 아웃사이더화를 걱정했다.
이런 현상은 학부제를 택한 대학 어디서나 비슷하다. 가뜩이나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신세대 아닌가? 이들이 졸업하고서 나마 '아웃사이더 사회인'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경북대는 학부제를 없애고 다시 학과별 모집으로 바꿨다. 1998년에 학장실 점거라는 홍역을 치른 뒤 내려진 선택이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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