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16)

입력 2001-04-18 14:20:00

◈중국 횡단철도(TCR)-베이징중국 단둥역에서 오후 7시15분 평양발 베이징행 K28호 국제열차에 오른 취재팀은 광활한 대륙을 밤새 달려 다음날 오전 9시30분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 입성했다.열차는 1천100여㎞를 14시간 걸려 주파한 것이다. 열차 끝부분에는 평양에서 넘어온 객차(조선족들은 이를 '빵통'이라 부른다)가 2량 달려 있었는데, 북한 공안원이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가 열차속 남북상봉은 끝내 이뤄지질 못했다.

문을 열수 없냐고 묻는 취재팀에게 중국 여승무원은 "평소에도 국경만 넘으면 저러니 우리로서도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상봉실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베이징에 첫발을 디딘 취재팀은 중국 정부의 실크로드 전략을 들어보기 위해 철도부 관계자들에게 도착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취재팀이 도착하기 직전 중국 외교부가 전 공무원에게 외국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금한다는 특별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구체적인 이유야 알수 없었지만 그 지시가 얼마나 엄했던지, 도착 하루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를 약속했던 공무원들조차 고개를 내저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취재를 시도하던중 취재팀 앞에 선뜻 나선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중국 국제경제자문공사 총경리 추이 관졔(崔冠杰.52)였다.

장쩌민 국가주석의 측근중 한명으로 알려진 그는 취재팀과 전혀 사전접촉이 없었음에도 방문 목적을 듣고는 곧바로 취재팀이 머물던 호텔로 달려왔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 집에서 쉬고 있던 그가 이처럼 달려온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 자신이 바로 1992년 개통된 TCR(중국 횡단철도) 건설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가 서울에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사무실을 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애태우던 그에게 취재팀은 TCR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옛 실크로드를 통해 세계문명을 주도했던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미 10여년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즉 흩어진 작은 성들을 연결, 만리장성을 이뤄냈듯 전국의 철도망을 이어 1992년 TCR이라는 대동맥을 만들고, 지금은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대역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추이 총경리는 "중국은 모든 것이 준비돼 있다. 경의선 복원시기만이 문제될 뿐"이라고 못박았다. 그가 말한 TCR의 장점을 대략 다음과 같다.물론 이 모두는 숙적 관계인 러시아의 TSR을 겨냥해 한 말이다.

"우선 운송거리가 짧습니다. 중국을 거쳐 로테르담까지 갈 경우 그 거리가 1만962㎞인데 이는 TSR보다 918㎞나 짧은 것입니다. 또 칭다오 남쪽에 위치한 렌윈항 등 큰 항구들이 철도와 연결돼 있어 복합운송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특히 운송화물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렌윈항에서 아라산코우까지 전 노선에 걸쳐 통신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니 한국열차 운행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

특히 그는 "신강위구르자치구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잇는 철도가 2005년 완공될 계획인데 이 노선을 이용할 경우 유럽까지 보다 쉽게 열차가 달려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대로 TCR은 문제없다치더라도, 우리가 이를 통해 유럽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단점은 경유해야 할 나라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유럽까지 가자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최소 7개국 이상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는 곧 운송 위험과 운송료 부담의 증가를 뜻한다. 물론 관련 국가간에 운송협정이 채결돼 있긴 하지만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일부 국가들이 이를 지키지 않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운송료를 보면, 현재 컨테이너 1개를 중국 렌윈항에서 카자흐스탄 접경지역인 아라산코우(4천143㎞)까지 운송하는데 중계비와 세관관리비 등 대략 1천달러가 소요된다. 그런데 카자흐스탄 등 독깁국가연합(CIS) 국가들이 요율을 중국보다 훨씬 높게 책정, 유럽까지 가자면 3천500달러나 든다.

이는 선박으로 운송(거리 1만9천889㎞)할 경우 1천500달러와 비교하면 배 이상 높은 것이다. 또 TCR의 일부 노선이 러시아 영내를 통과하는데, 러시아가 TCR 물량처리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고, 운송요율도 ㎞당 0.3달러로 TSR 화물의 배를 받고 있다.

또 중국(표준궤)과 CIS국가(광궤)간에 철로 폭이 달라 환적을 해야 하는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이같은 문제점은 중국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추이 총경리는 이에 대해 "안정된 요율과 간편한 수속을 위해 해당 국가들과 협의를 계속하고 있고, 그들도 실크로드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런 단점은 머지않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으로선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을 잘 지켜보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김기진기자

사진.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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