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누비는 '계절파괴 패션'

입력 2001-04-02 14:36:00

반팔 셔츠에 허벅지까지 드러낸 핫팬츠, 그리고 롱 가죽 부츠.변덕스런 꽃샘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도 햇살이 따뜻해지는 한낮엔 벌써 초여름 패션이 제철을 만난듯 거리를 누비고 있다.

28일 오후 대구 동성로 한 패션몰에서 만난 강현아(21·대학생)씨. 빨간색 반팔 티셔츠에 상큼한 미니스커트 차림. 아직 여름 옷을 입기엔 무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녀는 "철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고정관념"이라고 반박했다.

이제 패션에서 계절을 찾는 것은 낡은 생각이 돼 버렸다. 이른바 패션에 '계절파괴(seasonless)'현상이 상식처럼 돼 버린 것.

정소영 베스띠벨리 디자인실장은 "어디서나 냉난방이 잘 되고 자가용 문화가 정착되면서 계절감각이 둔화돼 계절 구분없이 옷을 입게 됐다"며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계절에 맞추기보다는 개성에 따라 옷을 입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팔 차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옷장에 들어가야 할 캐시미어와 가죽 소재의 옷차림이 있는가 하면 방한용인 숄을 걸친 젊은 여성의 옷차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이다.

특히 숄의 경우 2년여 전부터 등장, 인기를 얻고 있다. 반팔이나 소매없는 옷을 입을 때 서늘함을 덜 수 있고 햇볕이 몸에 직접 닿는 것을 방지해 주는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

계절감각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코디네이터의 기본원칙도 붕괴되고 있다. 상의는 여름옷에 하의는 겨울옷, 얌전한 정장재킷에 도발적인 반바지 등 일부러 엉뚱하게 입기도 한다.

겨울용으로만 인식돼 왔던 부츠와 워커를 봄·여름에 신는 것은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유행, 현재는 패션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겨울철 제품과 달리 시원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에나멜 등 광택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밝은 색상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일부 전위적인 디자이너들에 의해 선보여진 계절파괴 패션은 연예인들이 즐겨 입으면서 시선을 모으게 됐고 소비자들의 '따라하기' 과정을 거쳐 유행물결을 타게 됐다.

패션관계자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해진데다 섹시한 매력을 드러내려는 심리적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면서 계절파괴 패션이 대중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은 그 사회의 문화와 사회상을 엿보게 하는 거울이다. 몇년전만해도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계절파괴 패션이 대중화되고 있는 데는 사회의 다양화와 함께 규제와 틀을 벗어나려는 현대인의 심리, 그리고 이같은 개인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개성표현'으로 수용하는 심리적·시대적 환경변화가 계절파괴 패션의 대중화를 낳게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김문영(계명대 패션학부) 교수는 "패션은 문화발전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편 사회변화에 가장 민감하다"며 "계절파괴 패션은 일시적 유행이 아닌 다양한 패션의 흐름 중 하나로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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