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서설'이라며 반기는 봄눈이 내리던 30일 오전 성주 초전면 신성종돈장. 이곳에서는 그러나 활기 대신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직원들의 얼굴에 비치는 기운에서는 살기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자식 같이 아꼈던 돼지들에 대한 경매가 실시될 참. 게다가 경매에서는 브로커와 폭력배까지 설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던 중이었다.
"최고였습니다. 미국 최대 양돈 농가에 연수 가 우리 농장 '이유두수'가 25마리라고 했더니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며 되돌아 가라고 했었지요". 직원 유동인(39)씨는 회한에 젖어 있었다. '이유두수'는 어미 한마리가 일년 중에 낳는 새끼 숫자. 세계 평균은 19마리에 불과하다. 그게 25마리나 된다는 것은, 기술이 최고라는 의미였다.
거기다 5천500평의 광대한 면적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농장. 세계 돼지농장 중 상위 1% 이내에 든다고 PIC라는 기구가 공인한 농장이기도 했다. 직원 30명 대부분도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엘리트들.
한국 돼지 산업의 대명사였다고도 했다. 시설 투자액만도 120여억원. '센트라이브 스톡 시스템'이라는 최첨단 시설은 온도·습도·환기·냉난방을 자동 조절하고, 사료 주기에서부터 폐수 처리까지도 자동처리했다. 말하자면 '돼지 호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세상 흐름은 거스르지 못했다. IMF 사태가 닥치기 직전 거대한 자금을 투입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달러당 790~830원 할 때 들여 온 리스자금은 환율이 1천600원대를 오르내리면서 이자 부담을 몇배로 키워 버렸다. 작년 3월 파주에서 발생했던 구제역은 결정타를 날렸다. 수출길마저 막혀 버린 것. 막다른 곳은 작년 10월의 부도, 그리고 도산이었다.
그 이후엔 직원들이 농장을 지켰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개인재산까지 저당잡혀 자금을 댔다. 그렇게 쌓인 직원 부담은 재산보증 24억원 등 30여억원에 달한다고 했다. 경매가 있던 날 이들의 얼굴이 굳어야 했던 이유는 거기에도 있었다.
드디어 소문대로 건장한 남자들이 경매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찰이 출동했다. 그 덕분에 경매는 진행됐다. 돼지 6천 마리의 낙찰가는 6억7천여만원. 낙찰 역시 직원들이 바라던 대로 됐다.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직원들의 얼굴에 눈(雪)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가 흐르고 있었다. 1990년대 들면서 첨단화를 외쳤던 우리 농축산업의 현실이 거기에 있었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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