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의 장묘문화-생전 업적 비해 단출

입력 2001-03-24 14:29:00

국내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재벌 1세들은 그들이 생전에 일궜던 '위업'과는 달리 묘지는 비교적 검소하게 조성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함께 화장(火葬)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 21일 별세한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경기 하남시 창우리 선산에 고인의 부모 및 독일에서 사망한 동생 신영씨와 나란히 묻힌다.

장례식의 대변인격인 정순원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부사장은 묘소의 크기에 대해"정확한 평수는 모르지만 아주 조그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호화묘역이 아님을 강조했다.

유가족들은 검소했던 고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른다고 밝혔으며 영정차량에도 장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87년 작고한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묘소는 경기 용인시 용인에버랜드 내 호암미술관 바로 옆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묘역은 이 회장과 지난해 작고한 부인 박두을 여사의 묘 등 2기만 나란히 있어 삼성가의 가족묘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삼성측의 설명.

묘의 봉분이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조금 크기는 하지만 호화스런 수준은 아니며 앉아있는 모습의 고 이 회장 본인 동상만이 묘 앞에 설치돼 있을 뿐 다른 장식물은 없다.

지난 89년 별세한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 이양구 회장의 묘소는 동해바다와 공장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강원 삼척 동양시멘트 공장 안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시멘트 공장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고인은 "죽어서도 시멘트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싶다"며 "여기가 바로 내 자리"라는 얘기를 생전에 종종 했었다는 것화장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 98년 8월 작고한 최종현 SK 전 회장은 당시 재계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화장을 택해 재계 안팎을 놀라게 했다.

최 회장은 가족과 그룹경영진에게 "화장문화의 보급을 위해 값싸고 훌륭한 화장터(장례식장)을 지어 사회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이에 따라 SK그룹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서울시와 납골공원 조성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 지난해 8월말 별세한 최윤원 SK케미칼 회장도 숙부인 최 회장처럼 화장했다.SK그룹 관계자는 "서울시에 5만평 규모의 공용 납골공원을 만들어 기부하기로 했으며 공원이 조성되는대로 현재 경기 화성군 봉담면 선산에 가묘상태로 묻혀있는 두 분을 모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94년 작고한 코오롱 창업주 이원만 전 회장은 추풍령 휴게소 근처의 경북 금릉군 금릉공원묘지에 부인인 고 이위문 여사와 함께 묻혀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고향인 경북 영일군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 금릉공원에 장지를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40평 내외의 묘소는 별다른 장식물 없이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작고한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도 화장돼 경기 광주 가족납골탑에 안치돼 있으며 아들인 장세주 현 동국제강 사장도 이같은 유지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고 회사측이 설명했다.

손길승 SK 회장은 지난 99년 모친상을 당하자 이를 주위에 알리지 않고 화장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바 있으며 고건 서울시장 및 이세중 전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사회 저명인사 30여명과 함께 사후 화장을 공개 서약하기도했다.

LG그룹 역시 LG상록재단을 통해 '한국장묘문화개혁 범국민협의회'에 발전기금을 전달하는 등 장묘문화 개선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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