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장등산 등 도심 녹지 훼손 심각곳곳이 밭떼기로, 권리금까지 오가

입력 2001-03-20 12:21:00

"수년전만 해도 4~5곳에 불과하던 밭이 지금은 80여곳으로 늘었습니다". 19일 오후 2시 대구시 남구 대명10동 달성교육청 뒤편 장등산 자락. 40대 한 주민이 괭이로 밭을 고르고 있었다.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던 이곳은 주변 500여평 곳곳이 거대한 '밭떼기'로 둔갑해 있었다. 50여 군데 밭떼기는 각각 나무와 전선줄로 경계표시를 해 놓았고, 새로 땅을 일구기 위해 수북히 쌓아놓은 거름도 보였다. 움막 3곳에는 괭이, 호미, 삽, 농약통 등 농기구들이 가득차 있었다.

대구시 남구 대명10동 달성교육청에서 대명4동 가톨릭병원에 이르는 임야 2만4천평의 장등산. 대구 도심의 대표적 녹지공간의 하나인 장등산이 마구잡이 경작과 벌채로 훼손이 심각할 정도다. 인근 달서구와 남구지역 주민들의 등산로로 각광받고 있는 이 산밑자락이 최근 2~3년사이 빙둘러가며 1천여평 가량 밭으로 변했다.

등산객 정모(45)씨는 "성당못이 바라다보이는 장등산이 주민들의 개간으로 경관이 엉망이 됐다"면서 "소나무와 노간주 나무가 상당수 잘려나가 등산로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성교육청 뒷자락뿐 아니라 성당못앞 도로를 따라 경혜여중에 이르는 1km구간에도 30여개의 밭떼기가 형성돼 있다. 경혜여중 인근의 한 주민은 "지난해 집 뒤편 산자락을 밭으로 만들었는데 수익이 괜찮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경작키로 했다"면서 농기구 보관용 천막을 설치하고 있었다.

이처럼 너도나도 밭을 일구면서 경작권을 둘러싸고 '권리금'까지 생겨났다. 주민 김모(48.여)씨는 "주변에서 마늘, 파, 고추 등을 심는 것을 보고 올해 권리금 5만원을 주고 10평 정도를 구했다"면서 "뭘 심을지 궁리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오는 21일 장등산 정상(해발 101.7m) 3천여평에 히말라야시다 1천그루를 심을 계획이어서, 한쪽에서는 나무를 심고, 다른 한쪽에선 벌채가 이뤄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남구청 관계자는 "장등산 밑자락의 밭경작이 수년동안 조금씩 이뤄져 단속을 제대로 벌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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