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풍속도 극심한 양극화서민 한파, 부유층 흥청망청

입력 2000-12-22 12:13:00

서민들은 연말모임을 축소하거나 아예 취소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반면 일부 부유층은 골프 여행과 고급 호텔 망년회로 흥청망청, 연말 풍속도가 계층별로 극심한 양극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몰아치고 있는 불경기 한파로 마음까지 얼어붙은 서민들은 요란한 망년회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회사원 권오흠(38.달서구 상인동)씨는 "회사 망년회를 호텔에서 열 계획을 세웠다가 단체 영화관람과 호프집 회식으로 끝냈다"며 "절약한 망년회 예산은 고아원과 양로원에 기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훈(32.동구 방촌동)씨는 "구조조정으로 실직당한 친구들이 있어 위로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며 "술, 과일 등을 나누어 준비, 집에서 부부동반 망년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말특수'를 기대했던 음식점들이 울상이다. 지난해 예약초과 특수를 누렸던 중구 남일동 ㅅ음식점의 경우 망년회 모임이 지난해의 60~70% 수준밖에 되지 않는데다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잦다는 것.

수성구 시지동 ㅊ가든 업주도 "지난해에 비해 모임도 줄었을 뿐더러 지출 한도를 정해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매상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한숨지었다.

반면 골프여행이나 고급 호텔, 음식점을 찾는 일부 부유층의 송년행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요란스럽다.

시내 ㅅ여행사에 따르면 연말연시 제주도 관광은 주말 예약은 물론 평일 예약까지 마감됐고, 골프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작년에 비해 30%정도 늘어난 상태다.

여행사 관계자는"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관광여행은 여전하다"며 "제주도 골프 여행의 경우 문의와 신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고급호텔도 망년회 규모는 줄었지만 연말 연회석 예약률이 80-90%를 웃돌고 있고 고급 음식점도 연일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해직, 부도...송년모임 왜이리 어색하노

지난 15일 송년모임 겸 동갑계에 나갔던 공무원 윤모(52.남구 봉덕동)씨는 아직도 우울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향친구 28명이 10여년 동안 끌고온, 언제나 옷음이 넘친 모임이었지만 이날은 3명이나 빠져 있었다.

건축업을 해온 친구는 부도 이후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다 지난달 세상을 떴고 농사꾼인 한 친구는 맞보증 후유증으로 생고생을 하다 5개월전에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통업을 하는 다른 친구는 부도이후 잠적해 연락이 끊어진 상태. 이날 동갑계는 평소 2,3차까지 가던 관례를 깨고 저녁식사와 소주 몇잔으로 끝냈다.

양모(34.수성구 지산동)씨도 지난 16일 고교 동기모임에 참석했다 예년과 다른 분위기에 기분을 잡쳤다. 세달에 한번씩 열리는 동기모임에 20명중 10명만 참석한데다 1년동안 한차례도 나오지 않았던 한 친구가 술자리 도중 보험상품 안내장을 보낼 주소를 요구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자신이 다니던 자동차사가 퇴출돼 카드사로 자리를 옮겼다며 회원가입을 권유했다. 이날 분위기는 자연 어색하게 돌아갔다.

연말을 맞아 한창 열리고 있는 동창회, 친목계 등 각종 송년모임. 예년 같으면 모두들 열일을 제쳐놓고 모여 앉아 왁자하게 한해를 회고하며 회포를 풀 송년모임이 불경기와 구조조정 여파로 눈에 띄게 예전같지 않다.

참석자도 크게 줄고 분위기도 가라앉아 아예 내년으로 모임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않다. 40, 50대 모임에서는 직장생활 스트레스나 부도 후유증으로 졸지에 세상을 뜨거나 병원신세를 진 얘기가 주요 화제거리다.

은행원인 김모(42.중구 동산동)씨는 "요즘 송년모임은 친구나 회원들 가운데 죽거나 잠적한 얘기가 빠짐없이 등장해 대부분 떠들고 놀 분위기까지 못간다"며 "참석자가 크게 줄면서 모임자체를 해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송년 풍속도는 모임 규모가 클수록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9일 대구 모호텔에서 열린 ㄱ중학교 동기회. 매년 100여명이 모여 성황을 이룬 것과 대조적으로 참석자는 고작 60명 정도였다.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모(49)씨는 "불참자중 절반은 직장에서 쫓겨난 뒤 창피해서 못나오겠다고 했고 나머지는 회사부도로 잠적했으며 3명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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