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라기들이 후두두 흩어져 달아나려 했지만 한 마리는 기어코 붙잡히고 말았다. 매가 연방 쪼아대자 깃털이 하늘로 흩어졌다. 바라 보던 다섯살 남짓한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그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야. 메추라기 알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땅쥐를 잡아 먹는 것 역시 이 매란다.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조손이 함께 함정을 파고 속에 옥수수를 뿌렸다. 칠면조 여섯 마리가 걸려 들었다. "할아버지, 입구가 꽉 막힌 것도 아니어서 머리만 숙이면 빠져 달아날 수 있는데도 칠면조들이 왜 이 속에서만 꽥꽥거리고 있지요?"
"칠면조란 사람과 닮은 데가 있어. 저것 봐. 뭐든 다 알고 있는 듯 행동하면서 자기 밑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 보려고는 하지 않지. 항상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고만 있는 바람에 아무 것도 못배우는 거야. 그건 칠면조가 짊어져야 할 짐이란다".할아버지가 세 마리는 풀어줬다. "누구나 자기에게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하는 거야. 꿀벌처럼 필요한 것 이상으로 쌓아 두려는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이 있지. 그런 사람들은 남의 것을 또 더 뺏고 싶어 하지.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고, 그 이후엔 길고 긴 협상이 이어져.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할아버지는 봄과 여름에는 덫을 놓지 않고 물고기를 잡았다. 짐승들도 짝짓기를 해야 하는 계절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사냥하고 다니면 새끼를 제대로 기를 수도 없어, 결국엔 사람이 굶주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슴을 잡더라도 가장 좋은 놈을 잡으려 해서는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이 진리는 흑표범도 알고 있지".
소년에게 영혼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준 사람은 할머니였다.
"사람은 누구나 두개의 마음을 갖고 있지. 하나는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꾸려가는 '몸의 마음'이야. 또하나는 '영혼의 마음'이라는 거야. 이것은 생명과 이치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지.
만약 몸의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꾀를 내면 영혼의 마음이 점점 졸아들어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돼. 그런 사람은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이야. 나무를 봐도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하고 얼마 짜리인지로만 보이지.
근육과 비슷해서 영혼의 마음은 쓸수록 더 커지고 튼튼해진단다. 이 마음을 잘 가꿀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남을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란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걸 할 수 있어".
늦가을이 닥치자 그 해의 마지막 나비 한마리가 옥수숫대 위에 가만히 앉아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오는 죽음. 그냥 태양의 마지막 온기를 고마워할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몸의 마음'도 졸기 시작했다. 영혼의 마음이 그것을 대신했다. "이번 삶도 나쁘지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얼마 후 할아버지를 따라 간 할머니의 옷섶에 꽂혀 있던 편지도 같은 인사를 남겼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거야.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 번에는 틀림 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인디언 작가 포리스트 카터의 자서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중 몇개 에피소드를 재구성해 만든 이야기이다. 이제 또 한해가 졸아들고 있다. 내일이면 벌써 동지.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그 책 속 사람들이 문득 다시 그립다.
병들고 힘든 사람들, 임차료 못내 재계약 앞두고 절망 중일 영세민 아파트의 이웃들, 직장 잃은 젊은이들, 일거리 없어 방황하고 있을 인부들, 이 모든 이들을 위해 이번 겨울이 날씨나마 덜 가혹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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