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지도부 현장 체험

입력 2000-12-13 00:00:00

동교동계 퇴진 논란 이후 민주당이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휘청대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해찬 정책위의장이 사표를 던진 뒤 여야간 쟁점 법안을 다룰 정책협의회가 지연되는 사태가 빚어지는가 하면 민생현장을 방문한 최고위원들은 싸늘한 밑바닥 민심에 놀라야 했다.

민심파악을 위해 12일 5개조로 나눠 시장, 공장등 민생현장 방문에 나선 민주당 지도부는 지구당과 현장에서 서민들과 당원들로부터 불만에 가득찬 '쓴소리'를 들으며 밑바닥 여론을 체감했다.

특히 12일 민심체험에서는 최근 여권내부의 상황인식에 대한 '풀뿌리' 여론이 가감없이 표출됐고, 듣기 거북한 직설적 불만까지 스스럼없이 터져 나와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쭑서울 구로시장=서영훈(徐英勳) 대표와 김중권(金重權) 최고위원이 방문한 구로시장에서는 "장사가 안돼도 이렇게 안될 수 없다"는 상인들의 항의성 호소가 이어졌고, 서 대표는 "아이고…"라며 "미안합니다"는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포목상을 운영하는 유모(73)씨는 "35년 장사하면서 이렇게 살기 힘든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이 정부가 정말 잘할 줄 알았는데"라고 어려움을 호소한 뒤 서 대표에게 "제발 칭찬받는 분들이 되어달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시장통 곳곳에서 상인들의 호소가 이어지자 심각한 표정으로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때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때보다는 어떠냐"고 물었고, "그때보다는 물론 어렵고, IMF 직후 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을 듣자, "아이고…지금이 어려운 때는 어려운 때"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서 대표는 40여분간의 시장방문을 끝낸 뒤 기자들의 질문에 "대강 짐작은 했지만 역시 어렵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면서 "경제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침통해 했다.

쭑인천=박상천(朴相千)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이 방문한 인천지역에서는 당지도부에 대한 당원들의 억눌린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지구당 사무국장은 당 지도부를 겨냥,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죄송하다고하라. 뺨을 때리면 맞아라"고 흥분했고, 나머지 당직자들도 "최고위원들이 말이 많다. 몸을 낮추라", "대통령만 쳐다보지 말라", "대통령 주변에 쓴소리가 없고, 충성의 목소리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한탄과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또 "제발 노벨평화상 얘기는 그만해야 한다", "노르웨이 국민은 촛불행진까지하며 축하하는데, 우리 국민은 냉소적으로 너무 안타깝다"는 얘기가 나왔는가 하면"도대체 당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쭑경기 평택=권노갑(權魯甲) 장태완(張泰玩) 최고위원이 방문한 경기 평택에서도 불만에 가득찬 질책의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당직자들은 "민주당은 뭐하고 있느냐. 초등학생이 욕을 할 정도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박금성(朴金成) 서울경찰청장 사건도 문제가 많다"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총체적 난국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권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경제가 힘든 것은 외래적 요인이 있음을 지적하며, 자신의 문제와 관련, "14세 때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40여년 험난한 가시밭길을 마다않고 같이해 왔다"면서 "정권교체를 한 이상 그 이상 바랄게 없다"고 강조했다.쭑서울 성동=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이 방문한 서울 성동지구당에서도 민주당 소속 한 지방의원은 "8·30 전당대회 이후 4개월간 최고위원들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권력투쟁으로 내분만 일으켰다"면서 "도대체 국민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없다"고 지도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고문들의 쓴소리=당 고문단은 12일 오전 당사에서 최근의 당내 갈등과 시국상황에 대한 쓴소리를 했다. 지역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시중 악성루머가 위험수위에 다달았다고 우려했다.

김영배 상임고문은 동교동계 2선 퇴진을 둘러싼 파장을 걱정했고 채영석 고문은 "시중에 여러가지 악성루머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권정달 고문은 "지역간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고 최명헌 고문도 "김대중 대통령이 각 지방의 민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민심이반을 우려했다. 서정화 고문은 "국정쇄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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