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내 유년의 겨울, 그 맑고 투명한

입력 2000-12-09 14:19:00

12월이다. 다시 겨울이다. 지난 겨울의 외투를 아직 꺼내지 않고 있다. 요즘의 계절은 저마다의 뚜렷한 구별이 잘 가지 않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 계절만이 가지는 분명하고도 산뜻한 맛이 엷어져 버려 계절의 명도가 떨어지고 있다. 봄 같은 겨울, 겨울 같은 가을일 때가 자주 있다.

겨울은 더욱 그렇다. 겨울이 겨울 같지가 않은 것을 두고 사람들은 지구온난화현상의 영향이라고들 한다. 매연을 비롯한 온갖 공해에 의해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고. 나는 이 지구온난화란 말을 들을 때마다 불룩한 아랫배를 씰룩거리며 가쁜 숨을 힘겹게 몰아쉬는 비대한 몸집의 지구의 모습이 상상되어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탁해져만 가는 도심

내 유년의 겨울. 먼 마을의 개 짖는 소리 사이로 문풍지가 파르르 귓가에서 안타깝게 우는 밤. 그 밤이 지나고 나면 창호지 문살 칸칸마다 보오얗게 아침이 온다. 댓돌 위에 벗어 놓은 신발에는 싸락먼지가 밤새 소복하게 둥지를 틀었고, 어머니는 장작으로 무쇠솥에 불을 지펴 식구들 세숫물을 데운다.

설설 끓는 물을 한 바가지 퍼서 얼어붙은 펌프의 입에 들이붓고 나면 펌프는 몇번의 씩씩거림을 거듭한 끝에 땅속 깊숙이 고인 침묵의 지하수를 뽑아 올려 힘차게 토해 낸다. 세수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올라치면 어느새 문고리에 손이 딱딱 얼어붙는다. 아직개지 않은 아랫목의 이불속에 발을 넣으면 한 보시기의 밥그릇 같은 온기가 반갑게 맞아준다.

된장 냄새 솔솔나는 시래기국으로 이른 아침을 먹고 나서는 학교길. 신작로는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어쩌다 발끝에 채이는 돌부리는 어찌 그리 깡여물게 아프던지. 말갛게 벗은 미루나무 너머의 새파란 하늘은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던지면 유리그릇처럼 소리도 없이 금이 갈 것만 같다. 얼어붙은 논바닥엔 장검처럼 길게 반사되는 아침햇살. 그 겨울의 모퉁이 한 쪽을 손으로 치면 쩡쩡한 공명음이 빗살처럼 퍼져나갈 것 같은 내 유년의 겨울. 그 겨울은 정말이지 쨍하도록 맑고 투명했다.

◈맑은 추위 느낄 수 없어

이곳 도심 한복판의 가로수, 잎 넓은 플라타너스는 가을이 깊어도 도무지 물이 들지 않았다. 그저 푸르딩딩하게 혹은 허옇게 말라서 간신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거나 그대로 힘없이 떨어지고 만다. 그 또한 공해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과 엽록소의 오묘한 조화가 만들어 내는 그 아름다운 색의 하모니에 물들어보지 못하는 플라타너스는 얼마나 불행한가. 황홀하고 혼곤한 사랑의 몸살을 앓아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겨울 같은 겨울이 그립다

집안은 언제나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지낼 만큼의 충분히 난방이 되어 있고 자동차 안 또한 그렇기는 마찬가지. 거기다가 관공서며 은행이며 백화점마다 후끈거리는 온풍기의 설치로 12월이 된 지금도 어디서고 겨울을 느낄 수 없다.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추위 또한 예전의 맑은 추위가 아니다. 우리 삶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것 같지만 그 온갖 편리함과 풍족함을 만들어 내는 물질의 기기들 뒤에서 도심의 플라타너스는 조금씩 제 빛을 잃어가고 겨울은 탁음으로 흐려지고 있다. 이 겨울 속의 우리는 가을이 되어도 곱게 물 한 번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버리는 도심의 불행한 플라타너스 같은 모습이 아닐까.

겨울밤 식구들끼리 옹기종기 둘러앉아 한입 썩 베어먹는 무맛 같은 겨울, 햇빛 아래 들고 보는 한 장의 얼음 같고 셀로판지 같은 깨끗한 차가움이 찰랑거리는 내 유년의 그 겨울이 몹시도 그립다. 회색빛 포도(鋪道)위에서 플라타너스가 마른 기침을 바투고 선 새천년 초겨울 하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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