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화백 형제 병실상봉

입력 2000-12-02 00:00:00

병실은 고요했다. 눈물만 흘렀다.50년만에 만나 '형님', '아우야'를 목청놓아 부르고 싶었지만 고령으로 쇠한 몸과 트이지 않는 말문에 운보(雲甫) 형제는 눈빛으로만 애닯은 정을 나눴다.

이마저도 기적같은 일이었다.

오후 3시20분께 숙소인 롯데월드호텔을 떠난 동생 김기만(71)씨가 5분만에 김기창(88) 화백이 입원중인 삼성서울병원 1902호실에 들어서는 순간 병상에 환자복 차림으로 누워있던 김 화백의 눈은 동그래졌고 벌어진 입은 닫히지 않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의식조차 불투명했던 운보지만 동생을 한눈에 알아봤다.

기만씨도 3개월전 풍을 맞아 1차 상봉에 참여하지 못했을만큼 몸이 불편한데다 형님을 뵌 감동에 한마디 감탄사조차 터지지 않았지만 두 손을 마주잡았다가 검버섯 피어난 얼굴을 서로 비벼대는 형제의 눈에서는 눈물이 이내 가득 괴어 흘러내렸다.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 된 두 형제 사이에서 운보의 아들 완(51)씨는 아버지가 가장 아낀다는 '승무'라는 작품을 액자에 담아 기만씨에게 전했다.

기만씨도 '태양을 따르는 한마음. 이천년 5월. 김기만' 이라고 적고 참새가 그려진 6폭 병풍중 그림 한점을 형에게 펼쳐보였다.

북에 살고 있는 누이 기옥(72)씨 등 가족 5명이 적은 '오매불망 보고싶다'는 편지와 그림, 난초, 목련 그림 3점은 오전 개별상봉때 조카를 통해 이미 전한 터였다.병실에서 이들의 상봉을 지켜본 사촌 기중(77)씨, 조카 완씨와 김아나윔(44) 남매의 눈에도 기만씨의 몸짓 하나하나가 운보와 빼닮았다.

병실을 나서는 기만씨에게 조카 완씨는 "내일 아침에 다시 뵈러 나가겠습니다"고 하자 기만씨는 "남쪽 가족들 주소 적어와라"고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병원 현관으로 향하던 기만씨의 말랐던 눈에서는 어느새 다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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