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재앙.공포 생생한 기록들

입력 2000-11-28 14:30:00

인간에게 쥐는 해롭고 두려운 동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중세시대때는 종교적 파문의 희생양이었다. 페스트의 역사에서 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894년. 페스트균이 발견되고, 쥐벼룩이 병을 옮긴다는 것을 규명하고 난 후였다. 하지만 쥐는 페스트의 주범이라는 혐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쥐가 페스트의 주범일까?

프랑스의 대학교수, 역사학자, 출판인,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 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쓴 '고통받는 몸의 역사'(지호 펴냄)는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는 병, 그 병을 둘러싼 일상의 자질구레하지만 너무도 절박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생생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서술한 책이다. 프랑스 세이유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발간하는 '역사(L'histoire)'지의 특별판으로 나온 책으로 원제는 '이야기가 있는 질병'.

병으로 고통받는 인간 몸의 역사를 짚어보고 있는 이 책은 1부에서 인간의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던 질병들의 얘기들을 모았다. 기존 의학사 저술에서 다뤄지지 않던 역질 주변의 이야기들이다. 애매하게 페스트 전염의 누명을 뒤집어 쓴 쥐이야기, 최초로 인간을 격리시킬 명분을 준 나병이야기, 전쟁보다 더 참혹한 티푸스 전염병 이야기 등 대역질과 그 이면에 놓여 있는 또 다른 고통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2부는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다루고 있으며, 우연적인 요소로 점철된 치유법 발견의 역사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작은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쥐에 얽힌 얘기뿐만 아니다. 1813년 폴란드와 독일을 거쳐 퇴각길에 올랐던 1만여명의 나폴레옹의 군인들이 몰살됐다. 이들이 몰살된 원인은 러시아 군에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티푸스'라는 질병때문이었다. 과로, 영양실조, 쇠약, 카타르성 혹은 신경성 열병 등 이름도 많고 정체도 애매했던 이 병은 위대한 나폴레옹 군대를 괴롭히고 작전상 후퇴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몰아넣게 될 '천연두'였다.

또 괴저병으로 목숨을 잃은 루이 14세 최후의 기록과 환자들의 호텔인 중세의 병원 모습, 19세기말 결핵균을 퍼뜨리는 원인이 된 가래침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의학의 진보를 이룩한 수혈과 광견병 치료, 약초의 효능, 19세기를 풍미한 만병통치의 해수욕 요법 등 치료의 역사도 기술하고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질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은 나병과 페스트, 천연두, 매독, 결핵, 암, 에이즈 등 인간에게 증세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개별적 혹은 집단적 형벌의 고통을 불러일으킨 질병들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우리 몸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최신 기사